황진선 논설위원

지난달 21일 문재인 대통령은 김형연 인천지법 부장판사를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법무비서관으로 임명해 사법부에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현직 법관 발탁에 대해선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소리가 적지 않았지만 사법개혁에 대한 분명한 의지가 확인됐기 때문이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김 비서관이)대법원장 권한 분산, 법관 독립을 주장하는 등 사법개혁에 대한 의지가 남다르다는 여론이 반영됐다”고 인선 배경을 공개해 수뇌부들을 뜨끔하게 했다. 김 비서관은 2009년엔 촛불시위 재판 개입 논란에 휩싸인 신영철 대법관의 사퇴를 촉구하고, 최근엔 법원행정처가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학술행사를 막으려 했다는 의혹을 앞장서서 제기한 개혁 성향의 인물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오는 19일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리는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사법개혁 여론을 수렴한다. 양 대법원장은 4월 말부터 학술행사 축소 압력 등에 대한 대법원의 조사가 미흡하다는 지방법원 법관들의 성명이 잇따르자 전국 법관들이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받아들였다.

법관들이 학술행사와 법원별 공식 성명에서 요구한 핵심 사항은 대법원장의 인사권과 법원행정처 권한의 축소이다. 우리나라 대법원장은 외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제왕적’ 권한을 갖고 있다. 임기 6년 동안 모든 대법관의 임명 제청권, 헌법재판관 3명과 중앙선거관리위원 3명 지명권을 행사한다. 대법관 후보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에서 추천을 받지만 대법원장 의견이 거의 절대적이다. 헌법재판관과 중앙선관위원 지명은 대법원장의 재량이다. 물론 임명권을 갖고 있는 대통령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임명 제청권과 달리, 대법원장은 실질적으로 제청·지명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법관 3000여 명에 대한 인사권도 있다. 견제 장치는 사실상 거의 없다. 인격을 믿고 맡길 수밖에 없다.

대법원은 지난달 29일 이상훈·박병대 대법관 후임으로 각계에서 천거한 36명을 공개했다. 대법원은 이들에 대한 의견을 수렴해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에 넘긴다. 추천위는 이달 중순쯤 4∼6명을 추천하고 양 대법원장이 이 중 2명을 제청한다. 그 과정에서 청와대와의 조율이 주목된다. 양승태 사법부는 대체로 기존의 법질서를 중시했다. 그러다 보니 사회 변화에 ‘적극’ 부응하는 새 판례는 많지 않았다. 양 대법원장은 엘리트 법관 중심의 순혈주의와 서열주의를 앞세운 인사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주권재민 의식이 높아지면서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정부나 국회와 달리, 임명된 권력인 사법부와 검찰에는 정당성 확보 노력과 민주적 통제가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과 헌법재판관 3명 지명권을 삭제하는 안을 검토하는 것도 그런 비판을 수용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는 현직 판·검사와 전관인 판·검사 출신 변호사의 비리가 끊이지 않아 국민의 불신이 커진 것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법관들은 사법부 독립이 사법권을 독점적으로 행사토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새겨야 한다. 1일 퇴임한 박병대 대법관은 사법권 독립과 법관 독립을 굳건히 하려는 논의가 자기중심적 이기주의로 비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법부의 독립은 공정한 재판제도를 확립함으로써 국민의 생명과 재산, 자유와 권리의 최후 수호자로서 제 역할을 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뿐 아니라 제왕적 대법원장도 권한 분산이 필요하다. 대법원장이나 대법관의 교체 같은 인적 쇄신의 영향은 유한할 수밖에 없다. 사법개혁은 입법을 통한 제도의 개선과 합리적인 관행의 축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를테면 특정 성향의 대법관을 임명하는 것보다는 법원조직법과 대법원 규칙을 개정해 대법관 제청에 영향을 미치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를 바꿔야 한다. 자문기구를 의결기구로 격상하고 추천위원을 내부 인사보다는 외부인사로 충원해야 한다. 회의 내용과 절차도 국민에게 공개해 알 권리를 보장하고 검증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대법원 구성이 법적 안정성과 다양성이라는 요건을 충족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사법 개혁도 권한 분산과 함께 인치(人治)가 아닌 법치(法治)의 확대가 요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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