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일본 정권 중 가장 보수적인 것으로 평가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과 집권 자민당이 조건부 대학 교육 무상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대졸자 청년실업이 극심한 한국의 입장에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포퓰리즘 정책으로 볼 수 있지만, 사실상 대졸자 기준으로 완전고용 상태에 이른 최근 일본의 취업 시장 여건을 감안하면 수요자들의 상황에서 출발한 정교한 맞춤형 포퓰리즘의 구현이라는 평가다.

자민당이 지난달 22일 일본 정부에 제언한 대학 등록금 부담 경감 방안의 핵심은 대학생들의 등록금을 정부가 내주고 졸업 및 취업 후 소득 수준에 따라 이를 상환하는 사실상 조건부 무상화 대학교육 정책이다.

이른바 ‘슛세바라이(出世拂い·출세나 계획에 성공했을 때 빌린 돈을 갚는 것)’로 불리는 이 정책은 대학 졸업 후 높은 급여의 일자리를 얻게 되면 지원받은 학비 전액을 국가에 상환하고, 급여가 낮은 곳에 취업하면 그만큼 적게 상환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일본 정부는 이 같은 대학 등록금 부담 경감 방안을 오는 2020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보수파로 분류되는 아베 정권과 자민당이 이런 진보적 포퓰리즘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배경에는 일본의 높은 취업률이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과 문부과학성은 올 3월 졸업한 전국 대학생 4770명을 상대로 표본조사를 실시한 결과, 지난 4월 1일 현재 구직 희망자 중 취업이 확정된 사람의 비율이 전년 동기 대비 0.3%포인트 오른 97.6%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일본 기업들은 대학뿐만 아니라 고교 졸업자들까지도 신규 채용 대상에 포함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결과 지난 3월 말 기준 일본 고교 졸업자의 취업률은 전년 동기 대비 0.1%포인트 증가한 99.2%(취업 희망자 17만3586명 중 17만2186명 취업)로 집계됐다. 아직 졸업을 1년여 남겨둔 현재 대학 4학년생들도 이달 1일 기준 취업 내정률이 63.4%에 달하는 만큼 일본의 취업 시장은 향후에도 안정적인 것으로 풀이된다.

학자금 대출로 인해 취업을 하지 못한 대학생들이 졸업 후 빚쟁이나 신용불량자가 되는 한국의 현실과 비교하면 일본의 이런 정책은 꿈같은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슛세바라이’ 정책은 대졸자 등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를 선결하면 국가 장학금이든 학자금 대출이든 대학 등록금 문제도 동시에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박준희 기자 vinkey@munhwa.com
박준희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