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소년兵’ 출신 이덕현 옹
‘참전용사 집지어주기’300호
“후배 장병들 큰 선물에 감사”


“6·25전쟁 직후 인민군에게 점령당한 강화 지역 마을마다 저를 비롯해 14∼16세 청소년들이 유격대를 조직해 주린 배를 움켜쥐고 총 한 자루 제대로 없이 몽둥이를 들고 월북자 등 공산당원들과 유격전을 벌였습니다. 가난한 집안의 유격대원들은 신발도 없이 맨발로 산천을 누비며 강화도 진강산 일대 강화지구 전투 등에 참전해 고향 땅을 지켰습니다.”

고향 땅을 지키기 위해 애국충정으로 자발적으로 결성된 청소년조직인 강화청소년유격대 대원으로 14개월(1950년 10월∼1951년 12월), 전쟁이 끝난 뒤 1957년 12월 다시 조국의 부름을 받고 현역으로 입대해 34개월 군 복무한 뒤 육군 병장으로 제대한 참전영웅 이덕현(81·사진) 옹은 8일 육군 후배들로부터 큰 선물을 받았다.

그가 여전히 초가삼간에서 찢어지게 가난하게 사는 것을 알게 된 육군 17사단 장병 100여 명이 강화도와 현대자동차의 후원을 받아 5월부터 새 보금자리를 마련해준 것이다. 그는 2005년에야 국가유공자로 인정돼 월 5만 원의 보상금을 받아왔다.

그는 8일 전화통화에서 “시각장애 아내와 뇌종양이 재발한 딸과 함께 어렵게 생활해 왔는데 육군 후배 장병들이 너무 큰 선물을 줬다”며 고마워했다. 그는 육군이 2011년부터 시작해 참전용사에게 새 보금자리를 제공하는 ‘나라사랑 보금자리’ 제300호 준공 및 현판식의 주인공이 됐다.

한편 이날 장준규 육군참모총장 주관으로 열린 ‘6·25 참전용사 모교 명패증정식’과 ‘무공훈장 수여식’ ‘나라사랑 보금자리 준공식’ 등 호국보훈행사에는 이용환 강화청소년유격동지회장 등 15명의 회원이 참석해 전우의 넋을 기렸다. 이 회장은 “당시 나라를 지키고 강화도를 지키는 데 나선 1500여 명의 앳된 소년병들은 무기라고는 낡은 소총 몇 자루와 몽둥이가 전부였다”며 “하지만 이들은 정규군 못지않은 활동을 펼치며 우리 군이 1·4 후퇴 이후 서울을 재탈환할 때까지 적으로부터 서해지역의 요새인 강화도를 굳건히 지켜 6·25전쟁 승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강화청소년유격대원들은 1951년 1월 인민위원회 소속 좌익세력과 강화 출신 공산당원 380여 명이 횃불을 신호로 강을 건너 북으로 넘어간다는 첩보를 입수해 돌머루 선착장에서 매복작전을 펼쳐 적 17명을 사살하고 월북자 등 70∼80명을 생포했다. 또 1951년 1월 당산 해안가로 상륙해 오는 인민군 2개 중대와 맞서 유격전을 치른 당산전투 등에서 활약했다.

정충신 기자 csju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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