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와인 초콜릿 / 심란 세티 지음, 윤길순 옮김 / 동녘

전 세계의 음식은 ‘표준화’를 위해 나아간다. 소와 돼지는 경쟁력 있는 종자만 남겨지고 비슷한 사육환경에서 같은 먹이로 사육된다. 식물 역시 가장 효율성 높은 종자가 선택돼 같은 방식으로 재배된다. 재배와 사육은 효율과 독점이란 이름으로 점점 ‘표준화’를 향해 치닫는다. 특정 품종을 집중적으로 재배하고, 표준화된 방식으로 사육하는 건 효율성을 높이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 품종뿐일까. 슈퍼마켓의 애호박은 비닐로 싸매서 키워 크기마저도 다 똑같아졌다. 재배에도, 유통에도 편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뚝배기 크기에 맞춰 딱 그만한 크기만큼 사육해 출하하는 삼계탕용 닭도 마찬가지다. 맛있는 다양한 음식들이 서서히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사라지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영미권 언론들로부터 ‘지구의 10대 환경 영웅’ ‘지구를 구한 여성 8인’으로 불리는 인도계 미국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저자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났다.

이 책은 와인, 빵, 초콜릿, 커피, 맥주 등 기호식품의 주재료가 재배되는 에티오피아의 커피나무 농장, 캘리포니아의 포도밭, 에콰도르의 카카오 농장 등을 4년 동안 여행하면서 사라진 맛과 잃어버린 풍미를 찾아 나선 여정의 기록이다. 종자를 지키기 위해 수익 없는 농사를 짓는 농부와 그들의 농사를 위해 표준화를 거부하고 전통적인 음식을 만드는 제조업자를 만나면서 저자는 사라져 가고 있는 맛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저자의 주장대로 음식의 다양성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슈퍼마켓 매장은 더욱 다양한 식재료로 채워지고 있는데 말이다. 미국 월마트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의 종류는 자그마치 153가지. 그렇다면 음식은 갈수록 다양해지는 건 아닐까. 저자는 ‘착각일 뿐’이라며 고개를 젓는다.

아이스크림의 모든 내용물 중 90% 이상이 한 품종의 소, 홀스타인에서 나온 우유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월마트에 진열된 21개 감자 칩의 재료는 수많은 감자 품종 중에서 단 5가지만으로 만들어지며, 과일 판매대의 바나나는 1000개 종류나 되는 품종 중에서 수송이 쉽거나 병충해에 강한 몇 종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오늘날 전 세계 인구가 얻는 칼로리의 95%는 겨우 30가지밖에 안되는 종에서 나온다. 슈퍼마켓에 가면 다양한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우리가 먹는 음식들은 주로 옥수수, 밀, 쌀, 야자유, 대두로 이뤄져 있다. 예전에는 전 세계 여러 곳의 산지에서 난 아주 다양한 먹거리를 선택했지만 지금은 단일 경작에 따른 단일한 식사로 대체되고 있다.

이런 결과가 초래하는 건 농산물의 종 다양성 감소다. 특정 품종만 기르고 그것만 먹으면 당연히 다른 품종은 서서히 사라진다. 사라진 품종을 기르는 방식과 그것을 음식으로 조리하는 방법도 따라서 잊힌다. 유전자뿐만 아니라 집단의 기억이 공유하던 맛까지 하나둘 사라지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 있는 대목은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에 대한 것이다. 당위와 계몽, 또는 설교와 의무감을 앞세울 것이란 예단과 달리 저자는 사람들이 ‘맛의 민감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먹는 것, 그리고 여러 가지 새로운 음식을 두려워하지 않고 경험하는 것, 저자는 이를 체내 보존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인 비보우(in vivo)’로 표현했다.

저자는 우리가 먹는 음식에 대한 기득권을 갖고 있다고 했다. 내가 먹을 음식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 이의 힘은 의외로 크다. 먹으면 식탁이 바뀌고, 식탁이 바뀌면 마트의 진열대가 바뀌고, 진열대가 바뀌면 유통·생산되는 제품이 바뀌기 때문이다. 다양한 맛과 풍미를 기억하고 기록하면서 세밀하게 맛을 분별할 수 있게 된다면 수요가 만들어지고 생산이 뒤따르면서 결국 농업생물 다양성을 지킬 수 있다는 얘기다.

‘입맛을 포기하지 마라’ ‘먹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며 인류가 마주한 생물 다양성 문제에 대한 답을 개인의 ‘인 비보우’에서 찾은 것은 매우 새롭고 흥미로운 시도지만 저자 말대로 ‘까다로운 입맛’이 과연 사라지는 음식을 살려내고 종 다양성을 지켜내는 무기가 될 수 있을까. 음식이 맛과 풍미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의미하는 가난한 나라의 국민이라면 어떤가.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루는 음식이 주식이 아니라 초콜릿, 커피, 와인 같은 기호식품인 건 아마 그래서인 듯하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박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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