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셰프들이 게스트의 냉장고에 있던 재료만으로 훌륭한 음식을 만들어내는 인기 TV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요리는 오랜 기간 ‘여성의 영역’이라고 여겨졌지만 화면 속 셰프들은 모두 샘킴, 이연복, 미카엘 등 남성들이다. 프로그램 시작 21개월이 지난 지난해 가을, 박리혜 셰프가 출연했을 때 비로소 ‘최초의 여성 셰프 등장’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남성들은 왜 그리고 언제부터 주방을 장악하게 된 것일까? 수많은 여성 셰프는 왜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을까?
미국 텍사스주립대 교수이자 사회학자인 데버러 A 해리스와 패티 주프리는 이 책을 통해 여성 셰프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의 문화를 추적해나간다. 요리 현장에서 요구됐던 ‘군기 잡힌’ 근무환경과 엄격한 위계질서 등은 남성 중심적 조직 규범을 내면화하기 위해 조성된 것이라는 게 이들의 분석이다. 셰프의 전문성을 대표하는 지표로 여겨졌던 각종 요리학교 수료 및 경연대회 수상 경력도 여성들이 주로 하는 ‘무임금의 가정적 요리’와 남성 셰프의 ‘고급 정통 요리’ 사이에 거리를 두는 기제로 작용했다.
여기에 여성 셰프를 과소평가하는 데 주류 미디어가 가세하면서 결국 ‘남성 셰프 중심의 전문 레스토랑’ 체제가 하나의 틀로 자리 잡게 됐다.
이들이 2004∼2009년 뉴욕타임스와 고메 등 대표적 신문 및 요리 잡지에 실린 2206건의 기사를 분석해보니 여성 셰프를 중점적으로 다룬 기사는 10%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혁신’‘열정’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묘사됐다.
이에 더해 책에 실린 여성 셰프 33명의 생생한 자기 고백은 실제 요리 현장에서 목도할 수 있는 남성 동료들의 차별과 편견, 성희롱을 그대로 보여준다. 오랜 경력의 여성 셰프조차 샐러드나 전채요리를 만드는 보조적 역할에 머물러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충분한 체력을 갖췄음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종종 자기 몸집만 한 것을 들어 올리며 힘을 ‘증명’해야만 한다. 여전히 많은 여성 셰프는 이러한 유리천장 아래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매해 상당수가 헤드 셰프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현장을 떠나는 것도 사실이다.
인지현 기자 loveofall@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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