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직후에 북한이 통치했던 38선 이북의 경기 연천군에서 동원된 것으로 보이는 주민들이 미군정 반대시위를 하고 있다.
해방 직후에 북한이 통치했던 38선 이북의 경기 연천군에서 동원된 것으로 보이는 주민들이 미군정 반대시위를 하고 있다.
38선 이북이었으나 한국전쟁에서 남쪽이 점령해 수복지구가 된 북부 포천·철원·김화 지역의 1954년 행정권 이양식에 주민들이 참석해 있다.   푸른역사 제공
38선 이북이었으나 한국전쟁에서 남쪽이 점령해 수복지구가 된 북부 포천·철원·김화 지역의 1954년 행정권 이양식에 주민들이 참석해 있다. 푸른역사 제공

한국전쟁과 수복지구 / 한모니까 지음 / 푸른역사

12세에 해방을 맞은 인제군 주민 A 씨는 북한 체제하에서 중·고교를 다녔다. 소년단과 민주청년동맹 활동을 했고, 실수가 있을 땐 철저하게 자아비판을 해야 했다. 북한은 조국과 민족을 위해 희생하는 ‘인민’으로의 의식개혁을 요구했다. 따르지 않으면 “발전할 수도, 살아갈 수 없었다.” 1950년 6월 24일 방과후에 북의 탱크가 남침하는 것을 지켜봤다. 인제는 남·북이 밀고 밀리는 격전지였고, 북측의 소개명령과 남측의 수용소, 산속으로의 피란을 거듭하다 남측이 인제를 점령하고 휴전을 맞았다. 유엔군사령부의 점령통치를 거쳐 남한에 편입된 뒤 이번에는 북한 정권에 부역했을 것이란 의심을 받으며 ‘국민’이 되는 교육을 받아야 했다. 그는 군 복무를 통해 사상의 의심을 씻고 면사무소에 임시직으로 들어갔다가 공무원이 돼 정착했다.

한반도는 1945년 해방과 동시에 38선을 경계로 미·소에 의해 분리 통치됐다. 강원 철원·인제·양양 등과 경기 연천 등은 해방 직후 38선 이북으로 북측의 통치지역이었다. 한국전쟁이 끝나는 시점에는 남북이 대치한 휴전선이 38선을 대신했다. ‘38선 이북이면서 휴전선 남쪽인 지역’, 곧 북측이 통치하다 남측이 점령한 지역에는 ‘수복지구’(收復地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남한의 헌법 영토 조항을 바탕으로 ‘본래 대한민국의 영토인데 일시 잃었다가 되찾은 지역’이라는 인식을 담고 있다.

책에 나오는 인제군 주민 A 씨의 회고는 바로 수복지구 주민들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해방 직후 인제는 북한의 ‘인민혁명’을 경험했고, 전후에는 유엔군(미군)의 관할 아래 있었으며, 한국전쟁이 끝나고도 1년이 지난 1954년 11월 유엔과의 행정권 이양합의를 통해 한국 정부에 이양됐다. 수복지구 주민들은 남북의 각기 다른 토지개혁, ‘인민’-‘국민’ 교육과 체제 경쟁, 지역 권력의 변동, 유엔 통치 시에는 ‘주민’이라는 애매한 법적 지위 등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한때 ‘북한 사람’이었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불신과 차별을 받았고, 지역 주민들 스스로 ‘수복민’이라고 언급되는 것을 꺼렸다. 한국현대사 연구자인 저자는 질곡과 모순이 응축된 수복지구의 연구에서 분단 극복의 교훈을 모색한다. 저자는 전쟁 중에 미군이 탈취한 북한 통치기의 문서 등 각종 국내외 자료와 현지인 인터뷰를 통해 해방 이후 1960년대까지 수복지구 주민의 삶을 복원한다.

북과 남의 엇갈린 통치수단과 과정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수복지구 주민들이 어떻게 대응(적응)했을까 하는 점이다. 주민들은 냉전적 국제질서와 남북관계가 가하는 충격에 빠르게 대응했다. 각종 자료와 증언을 종합하면, 북한 통치기에는 매우 체계적으로 조직·동원·흡수를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동요하거나 이탈하는 경우가 많았다. 남한 통치기에는 북한 통치기만큼의 조직·동원은 없었지만, 동요나 이탈보다는 침묵하거나 체제에 적극적으로 흡수돼 갔다. 예컨대 북한은 ‘무상몰수 무상배분’의 원칙으로 토지개혁을 해 지주를 해체하려 했지만, 과거의 소작인이 지주에게 남몰래 쌀을 가져다주는 등 지주·소작인 간의 사회적 관계가 잔존했다. 토지개혁으로 염원하던 토지를 소유했음에도 여전히 빈농 수준이어서 생활곤란 등으로 월남하는 사람들이 이어졌다. ‘유상몰수 유상분배’로 지주의 자본가로의 전환을 모색했던 남측의 농지개혁 당시에는 주민들이 전쟁 와중에 생긴 부재자의 토지에 대해 ‘국가 땅이 될 바에야 이웃 땅이 되는 게 좋다’고 생각하면서 주민의 자작지화를 묵인했고, 지주들도 보상보다 토지 소유를 택했다. 저자는 이러한 주민들의 대응을 ‘체제의 비틂’이라고 규정한다. 기본적으로 순응하지만, 국가권력이 미치지 않는 수준에서 자기 방식으로 수용하는 식이다. 저자는 수복지구 주민들의 이러한 ‘복수(複數)의 역사’ 경험은 통일 과정과 이후에 귀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또 하나 제기되는 게 38선 이북지역에 대한 통치권 문제다. 수복지구가 휴전 이후 유엔군 군정(軍政)의 이양 결정을 기다려야 했던 것처럼, 국제 합의에 따라 소련이 점령했던 38선 이북에 대한 남한의 결정권은 없다는 것이다. 즉 ‘한국의 법적인 통치권이 북한지역으로 자동으로 확대되지 않는다’는 원칙은 여전히 남아 있다. 현 북한체제에 이변이 발생할 때 당연히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북한지역으로 확대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수복지구의 이양 경험으로 볼 때 그렇지 않음을 직시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