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다 文人의 2세
父親 김규동 진보적 저항시인
김평우는 소설가 김동리 아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 과정에서 ‘막말 논란’을 일으킨 김평우 변호사에 대해 징계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제49대 협회장에 당선된 직후인 올해 2월 23일이었다. 김평우 변호사가 45대 협회장(2009년 2월∼2011년 2월)을 역임할 때 당시 김현 서울변호사회 회장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한 적이 있고, 변협 협회장을 나란히 지낸 두 변호사의 부친은 한국의 유명한 소설가와 시인이라 두 사람의 인연이 새삼 주목을 끌었다. 김평우 변호사의 부친은 무녀도, 황토기, 등신불 등을 쓰고 우익 성향의 민족문학론을 옹호한 김동리(1913∼1995)다. 김현 협회장의 아버지 김규동(1925∼2011)은 스승인 김기림 시인의 영향으로 초기엔 합리적 모더니스트였다가 유신시대였던 1970년대부터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 등을 지내며 재야단체에 가입하고 시국선언에 서명한 진보적 저항시인이었다.
―김평우 변호사를 징계하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됐습니까.
“그분이 아주 부적절한 행동을 하셨죠. 변협 조사위원회에 지금도 회부돼 있는 상태입니다. 저희 내부에서 격론을 벌였는데,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했기 때문에 징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반면 변호사가 변론과정에서 한 발언을 변협이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는 반대 의견이 팽팽해 사실 지금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징계를 올렸을 때가 언제죠.
“2월 말∼3월 초인데, 징계위는 3월에 열렸습니다.”
―너무 오래 끄는 것 아닙니까.
“대통령 탄핵도 끝났고, 김 변호사도 원래 살던 미국 캘리포니아로 돌아갔습니다. 징계에 실익도 없습니다. 개인적으론 그만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김 변호사를 징계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보복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씀이죠.
“제가 서울변호사회 회장을 할 때 대한변호사협회장이었던 김평우 변호사가 협회장 직선제를 주장했는데 저는 반대했습니다. 그러자 저를 징계위에 회부했습니다.”
―그런 것으로 징계위에 올렸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월권했다고. 결국 기각됐지만 그때 엄청 고생했습니다.”
인터뷰 도중에 김 협회장은 아버지에 관한 얘기를 많이 했다. 말투와 표정에 존경의 염이 묻어났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변협회관 내 협회장 사무실엔 김규동 시인이 직접 자신의 시를 나무에 새긴 서각,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시를 적어 넣은 시화 등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서슬 퍼런 유신시대 때 대학 2학년생이 민주화 시위를 한 데는 아버님의 영향도 있었겠네요.
“당연히 있었죠. 아버지가 민주화운동을 하시고 늘 유신체제를 비판하시니까 자연히 영향을 받았습니다. 제가 고등학생 때 아버지가 하시던 출판사가 등록 취소를 당한 적이 있었고, 한번은 남산의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1주일 정도 고초를 치르고 나오신 적도 있었습니다.”
―1977년도면 유신 막바지 때인데, 가두시위하다 잡혔었습니까.
“아닙니다. 대학 축제 시즌에 대강당에서 사회학과 주최로 500명 정도 참석한 심포지엄이 열렸는데 그 자리가 농성장으로 변했습니다. 제가 나가서 ‘여기서 농성할 게 아니라 밖으로 나가서 시위하자’고 일장연설을 했습니다. 그걸로 처벌받은 거죠.”
―기껏 학교 안 교실에서 학생들 상대로 연설했다고 한 학기 유기정학을 때렸다는 겁니까.
“그때는 웬만한 사건이면 100명 제명, 100명 유기정학 조처를 내리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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