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대로 사회 현안을 분석해 국가 진로와 정책 결정에 기여하겠다는 마음으로 비판과 대안 제시의 글을 쓰면서도 가끔 회의에 빠지곤 한다. 막상 그 결정은 ‘최순실류’의 시스템에 의해 이뤄지고 있음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의 의사결정 구조가 취약하다는 것은 나 역시 직접 경험한 바 있다. 그러나 ‘잘못된 정치를 아는 자는 초야(草野)에 있다’(왕충의 ‘논형’)는 말을 위안 삼아 다시 붓을 들어 본다. 일을 직접 진행하는 자는 갈피를 잡지 못하지만, 방관자는 분명하게 깨어 있을 수 있기에.
리처드 닉슨에서 빌 클린턴에 이르기까지 4명의 미국 대통령을 보좌했던 데이비드 저겐은 대통령의 성공 조건으로 크게 5가지를 들고 있다. △개인적 일관성 △국민과 정치인에 대한 설득력 △소명의식 △취임 초기의 순발력 △숙달된 참모진(‘권력에의 증언’). 나는 그중에서도 숙달된 참모진과 취임 초기의 순발력이 대통령 성공의 절반을 좌우한다고 본다. 취임 초기에는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한 정권의 역동성(力動性)이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하다. 취임 한 달째를 맞고 있는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역대 정권이 시도하려다 되레 당한 검찰 개혁만 하더라도 그 대안과 답은 이미 다 나와 있다. 선택과 결단의 문제다. 검찰권을 개혁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도 이미 충분히 형성돼 있다.
말이 나온 김에 문 정부의 개혁 정책과 국정 운영에 대해 몇 가지 고언을 하려 한다.
무엇보다도, 워싱턴 시절에 노예를 해방하고자 하는 조급한 이상주의를 버려 달라는 것이다. 대통령은 이상만을 추구할 수 없다.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은 정권이 특정 정파나 집단에 의해서 독점 행사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정치적 의사 형성 과정에 모든 국민이 균등하게 참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참여의 기회균등에 바탕을 둔 국정 운영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요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모든 면에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다만, 그 변화는 적법 절차에 따라 국민적 공감대 아래서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는 앞서 본 취임 초기의 순발력과 모순되는 주장이 아니다.
둘째, 한국 현대사를 보면 과거 정권으로부터 배우려 하지 않는 것이 우리 정치의 특징 중 하나다. 과거 정권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이 개혁이고 새 정권의 큰 특권인 것처럼 치부돼 왔다. 과거 정권의 잘한 일은 배우고 승계하며 잘못된 일은 반면교사(反面敎師) 또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이를 무시하고 새 정권마다 원점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그만큼 국익을 손상시키고 국민 역량을 낭비하는 것이다. 또한, 천하를 얻는 자는 사사로운 원한이나 감정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지도자가 잘못된 과거에서 배우지 못하면 잘못된 역사가 반복된다. 문 대통령은 과거 정권의 공과(功過), 특히 노무현 정부의 학습효과를 충분히 반영해야 할 것이다.
셋째, 현행 법제상 정부 조직과 청와대는 원칙적으로 분권형 시스템이다. 이런 구조 아래서 청와대가 일일이 간섭하며 중앙집권식으로 운영하다 보니 대통령 업무의 과부하 현상이 발생하고, 각 부처는 청와대만 바라본다. 시정돼야 한다. 그 일환으로 문 대통령은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책임총리제를 약속했다. 신선하게 다가온다. 아울러 정부의 모든 정책을 이념의 차원이 아닌,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분석평가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정책 탕평책’이 요구된다. 집행 과정의 저항과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끝으로, 듣기에 따라 거북할 수도 있지만, ‘우리만이 정의(正義)를 독점하고, 정의를 구현할 수 있다’는 편협한 우월주의와 영웅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는 일찍이 광화문광장에서 시작된 촛불 집회를 헌법의 테두리 내에서 이뤄진 정당한 국민 저항권 행사로 본 바 있다. 문 정부는 촛불 집회로 인한 저항권 행사의 산물이다. 그리고 나는 감히 단언한다―촛불 집회는 전체 국민의 약 70%를 차지하는 중도보수 세력 중 70% 정도가 동조하거나 자발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성공할 수 있었다고. 따라서 문 정부 탄생의 주역은 사실상 합리적인 중도보수 세력이었다. 그 점이 바로 혹시라도 ‘우리가 해냈다’는 우월감에 빠져 독단(獨斷)과 독선적인 국정 운영이 돼서는 안 되는 이유다. 지금 국민은 문 정부의 성공을 바라면서도 그 일거수일투족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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