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 노마드 / 도유진 지음 / 남해의 봄날
출퇴근길이 피곤한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한번쯤 해 봤을 것이다. ‘요즘 같은 정보기술(IT) 시대에 매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로 출근해야 하나.’ 회사가 갑자기 다른 곳으로 옮겨 준비 없이 생활을 정리하고 거주지를 옮겨야 했을 때 ‘도대체 이게 뭐야’ 푸념을 했을 것이다. 교통의 발달로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시대에도 가고 싶고 살고 싶은 곳을 휴가철에나 잠깐 돌아볼 수 있다는 사실에 한숨을 내쉰 적도 있을 것이다. 너무 익숙하고 당연하게 여겼던 이 모든 것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인가. 과연 이것이 우리가 일하고 살아가는 데 가장 바람직한 방식인지 의문을 가져봤을 것이다.
다큐멘터리 ‘원 웨이 티켓(One Way Ticket)’의 도유진(30) 감독은 이런 생각, 푸념, 한숨과 의문에 대한 답으로 ‘디지털 노마드’를 제안한다. 인터넷, 스마트 폰을 비롯한 디지털기기, 클라우드 서비스 같은 기술을 기반으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세계 어디든 원하는 곳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디지털 노마드 말이다.

이 책은 최근 제작이 마무리된 다큐멘터리를 위해 조사하고, 만난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디지털 노마드 현장 보고서’이다. 매력적인 저자의 이력만 봤을 땐 30대 여성 디지털 노마드의 도전을 다룬 에세이일 것으로 짐작했지만, 책은 진지한 보고서 형태를 갖추고 있다. 원격근무를 도입해 높은 효율을 올린 세계적 기업 오토매틱, 베이스캠프 등의 경영진들, 기업에 소속되거나 혹은 프리랜서로 원격근무하는 사람들, 이런 변화에 대처하고 있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들의 ‘현재 진행형’ 움직임이 생생하다. 이들은 원격근무를 시행하지 않는 회사는 가까운 미래에 경쟁에서 밀려날 것이라고 하고, 디지털 노마드로 사는 것은 일과 삶, 시간에 대한 개념을 바꿔 놓았다고 한다.
저자는 이들이 특별하고 한정된 케이스가 아니라 이미 동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보통 사람들의 일상이며 일과 삶의 새로운 방식이라고, 우리 사회에도 곧 다가올 미래라고 했다. 인터넷 속도가 빠르기로 세계에서 몇 번째를 다투지만 상하관계가 명확한 조직문화, 대면을 선호하는 업무 문화 때문에 디지털 노마드의 고립된 갈라파고스인 한국에도 곧 이 흐름은 당도할 것이라고 봤다. 저자는 자신이 속한 1980년에서 2000년 사이에 출생한 밀레니얼(millennial)세대는 일하고 살아갈 곳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첫 번째 세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사실 기술적 세팅은 이미 끝났다. 1995년 전 세계 인터넷 이용자는 3000만 명, 1998년에는 국경을 넘어 송금이 가능한 온라인 결제 시스템 페이팔이, 1999년 프리랜서의 구직 채용을 위한 온라인 플랫폼 이랜스가 등장했다. 초고속 열차, 저가 항공사로 이동은 더욱 쉬워지고, 2003년 인터넷 무료 전화 서비스 스카이프가 나와 어느 나라에 있든 부담 없이 전화를 걸고 받을 수 있게 됐다. 전자 상거래는 물론 실시간 소통이 가능하다. 게다가 평생 직장 시대는 끝났다. 다음 세대들은 일생 동안 40개 직업과 10개의 전혀 다른 경력을 쌓을 것이라고 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상은 바뀌고 사람들은 점점 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사무실을 벗어나 일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디지털 노마드가 곧 파라다이스는 아니다. 해변에 앉아 노트북을 펼쳐놓은 이미지로 대변되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은 미디어가 만든 환상이라고 일축한다. 이들 또한 일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저 정해진 시간과 공간에 출퇴근하지 않고 자신이 일하고 살아갈 장소를 스스로 정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때론 더 엄격한 자기 관리가 필요하다. 시간 관리와 책임감은 필수다. 시차가 있는 도시의 사람들과 회의하기 위해 새벽까지 깨어 있어야 할 수도 있다. 저자는 실제 외국의 통계 자료를 근거로 디지털 노마드가 젊은이 중심일 것이라는 편견도 깨고, 디지털 노마드라면 평생 여행하듯 다니는 것으로 착각하는 오해도 푼다. 디지털 노마드의 핵심은 선택의 자유, 즉 자신이 살 곳을 자신이 정하는 선택의 자유다. 그리고 이 차이가 삶에 가져다 주는 만족감은 상당하다고 한다.
“익숙한 것들에서 벗어나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식으로 살아갈 때 가장 행복한지 실험해 보고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디지털 노마드는 그 중에서도 매우 흥미로운 선택 중 하나다. 떠나든 머무르든, 그것은 그 다음의 문제다. 이 선택의 기회를 알지도 못한 채 그저 떠밀려 살아가기에는 한 번뿐인 삶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239 페이지)
참고로 그의 다큐멘터리 자체가 디지털 노마드의 결과물이다. 대학에서 영상을 만들어본 것이 전부인 저자는 인터넷을 통해 대부분의 기술을 익히고, 도움을 받으며 완성했다. 70% 가량은 저자가 직접 촬영·인터뷰했지만 나머지 촬영, 섭외, 편집, 후반 작업 등은 전 세계 각지의 동료들에게 원격으로 도움을 받았다. 이들은 대부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만난 인연이었다. 일과 삶의 방식은 이렇게 변하고 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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