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과 음식에 유독 관심이 많은 할리우드 스타 귀네스 팰트로. 그가 3개월 전쯤 자신의 트위터에다 뜬금없이 ‘앞으로 문어를 먹지 않겠다’는 글을 올렸다. 왜 그랬을까. ‘문어 금식 선언’ 뒤에 붙은 팰트로의 설명. “문어는 사람이 먹기에는 너무 똑똑한 존재다. 뇌 신경세포가 인간보다 더 많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너무 놀라 문어 먹는 것을 중단했다.”
실제로 문어는 무척추동물 중에서 가장 크고 복잡한 뇌를 가졌다. 인간보다 유전자가 1만 개나 더 많다. 똑똑한 생물을 먹으면 안 된다는 그의 주장은 ‘그렇다면 멍청한 생물은 마구 먹어도 된다는 얘기냐’는 힐난조의 질문으로 되돌려줄 수 있지만, 그가 사람들에게 ‘문어를 먹지 말자’고 부추기거나 문어를 먹는 사람을 비난한 것도 아니니 문어를 먹고 안 먹고는 그냥 그의 선택일 따름이다. 아무런 근거가 없긴 하지만 문어를 먹지 않겠다는 그의 선택은 어쩌면 이 책을 읽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동물과의 교감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논픽션 작가인 이 책의 저자가 돌고래, 돼지에 이어 정서적 교감과 탐구의 대상으로 선택한 생물이 바로 문어다. 왜 하필 문어일까. 비슷한 점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인간이 문어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문어는 여러모로 논쟁적인 생물이다. 문어는 그의 천적으로 알려진 대왕오징어와 함께 서구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흉측한 괴물의 상징이었다.
한국에서는 검은 먹물을 뿜는다고 해서 ‘글월 문(文)’자의 제법 격조 높은 이름을 얻긴 했지만 부녀자를 겁탈해 애를 배게 한다는 따위의 설화가 전한다.
한편으로 문어는 세계 각국에서 즐기는 음식이다. 한국에서 문어는 삶아서, 문어의 사촌격인 낙지는 생으로 먹는 게 일상이다. 서구에서는 우리처럼 낙지를 생으로 먹지는 않지만, 잘 삶아서 썰어낸 문어를 즐기는 건 마찬가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양의 해저에서 흐느적거리며 점액질처럼 흘러내리는 기괴한 문어와 얌전히 조리돼 식탁 위에 올려진 입맛 당기는 문어는 이미지가 이처럼 전혀 다르다.
저자는 뉴잉글랜드 아쿠아리움을 2년 동안 드나들면서 세 마리 문어(각각 이름을 갖고 있다)와의 교감을 시도한다. 문어에게 자신의 팔을 내주고 빨판의 감촉을 느끼는 것부터 시작한 교류는 점점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한다.
이 과정에서 저자가 알게 된 건 문어가 매우 영리하다는 것이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고 친숙한 사람을 환영한다. 마치 반려동물처럼 자신에게 잘 대해준 사람을 기억해 친근하게 굴고, 먹이를 주지 않는다며 심통을 부리기도 한다. 가끔 물벼락을 쏟아내는 장난도 쳤다. 문어가 지능이 있는 생물만이 가진 ‘유희’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저자는 문어와 교감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문어의 의식과 정신에 대해 다루고, 문어의 생태와 습성을 연구한 다양한 자료를 풀어놓기도 한다. 책은 줄곧 ‘인간의 쓸모’로서가 아니라 문어 자체의 존재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이 책이 종래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맨 앞의 질문으로 되돌아간다. 그 질문이란 “형태도, 감각도 전혀 다른 생물의 의식과 정신을 짐작하는 게 맞는 일일까”에 대한 것이다. 그걸 의심해서 인간은 죽었다 깨어나도 문어에 대해 알 수 없다고 가정한다면, 개나 고양이가 될 수 없는 우리는 어떻게 개나 고양이의 의식과 정신을 짐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과 문어와의 교감을 다룬 이 책의 기상천외한 시도가 재미를 넘어 묵직하게 다가오는 건, 우선 시종 진지하게 문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저자의 문장과 함께 수족관 문어들의 삶이 아쿠아리움 주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흐릿하게 겹쳐지기 때문이다. 쇠약해 병을 얻어 죽음에 이르는 문어와 난치병을 앓는 아내를 돌보는 사육사가 교감하고, 자살한 친구의 일로 고통스러워하는 자원봉사자가 생의 마지막 순간 알을 낳고 죽어가는 문어의 모습에서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한다.
머릿속에 위장이 있고 발에 생식기가 달린 문어도 고유한 의식을 갖춘 존중해야 할 영혼이며, 다른 생명체를 느끼고 알고 사랑한다는 것이 큰 축복이라는 게 문어와의 교감을 통해 저자가 얻은 결론이다. 문어의 미끈거리는 점액질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이 책을 읽어볼 이유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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