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차 베테랑 배우지만 현장선 신인처럼 몸 낮춰
배우 이정현의 이름 앞에는 ‘연기파’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연기를 잘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맡은 배역에 몰입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는 의미가 담긴 수식어다. 그는 이런 적극적인 태도로 여배우의 역할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충무로 상황을 정면 돌파하고 있다.
열 다섯 살이던 1996년 영화 ‘꽃잎’(아래 왼쪽 사진)에서 5·18 민주항쟁 당시 무자비한 폭력에 의해 미쳐버린 소녀 역을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연기를 시작한 그는 1999년 가수로 전향해 ‘와’ ‘바꿔’ 등의 히트곡으로 테크노 음악 열풍을 이끌었다.
하지만 연기에 대한 갈증으로 배우활동을 재개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던 중 2014년 한국 영화 흥행 역사를 새로 쓴 ‘명량’에 출연하며 다시 진가를 발휘했다. 이 영화에서 그는 말 못하는 비운의 여인 캐릭터를 맡아 대사 한 마디 없이 서너 장면을 소화했지만 이 영화가 176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흥행 순위 1위에 오르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그가 이순신 장군의 해전을 돕기 위해 절벽을 타고 올라가 치맛자락을 흔드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탄성을 내질렀다. 이어 2015년 청년층의 어려운 현실을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풀어낸 저예산 독립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아래 오른쪽)에 출연하며 20년 만에 생애 두 번째 ‘원톱’으로 나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이정현은 7월 개봉 예정인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에서도 ‘독기’를 뿜어내며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이 영화는 일제강점기 일본 군함도(하시마섬)에 강제 징용당한 조선인들이 목숨을 걸고 탈출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이정현은 온갖 수난을 겪으면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는 위안부 말년(위)을 연기했다. 그는 배역을 현실감 있게 표현하기 위해 평소 43㎏ 정도이던 몸무게를 줄여 촬영 기간 동안 36.5㎏을 유지했다. 이에 대해 그는 “작품에 누가 되지 않게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당시 위안부 피해자들은 잘 먹지 못한 상태로 학대당한 일이 많아 앙상하게 말라 있었기 때문에 신체 일부를 노출하는 장면을 위해 체중을 감량했다”며 “그냥 영화가 너무 좋아서, 배우가 너무 좋아서 좋은 시나리오가 주어질 때마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독립영화인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개봉 자체가 불투명했지만 좋은 스태프들과 하나가 돼 작업하는 과정을 즐기다 보니 상까지 받게 됐다”며 “그 작품을 통해 ‘군함도’까지 만나며 진실은 통한다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류 감독은 이정현의 연기 투혼에 대해 “작품에 대한 헌신이 대단한 배우다. 촬영 현장이 굉장히 힘들고, 체중 감량으로 앙상한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라 본인 컨디션을 유지하기도 힘들었을 텐데 힘든 내색 없이 다른 배우들과 스태프를 챙기는 모습이 너무나 감동적이었다”며 “경력이 오랜 배우임에도 새로 익혀야 하는 부분이 생기면 신인의 자세로 배우는 모습이 인상적이고 좋았다”고 말했다.
정두홍 무술감독도 “아픈 역사를 표현하기 위해 가냘픈 몸에서 체중을 더 감량했다”며 “무게가 5㎏이나 되는 총을 드는 액션 장면도 강단 있게 소화했다. 그게 배우의 힘인 것 같다”고 칭찬했다.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