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미 문화부 부장

지난해 파리 도서전은 출판인 사이에서 지금도 이야기되곤 한다. 당시 한국이 주빈국으로 초대돼 많은 출판인과 기자들이 참가했지만 대부분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등에 비해 규모가 작고 국내용이라는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개막과 동시에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놀랐고, 이들이 하루 종일 책과 함께 즐기는 모습에 더 놀랐다. 대통령을 시작으로 장관과 의원들이 잇달아 전시장을 찾자 부러움이 쏟아졌다. 존재 의미를 잃고 몇 년째 헤매는 서울국제도서전도 이런 축제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이 끊임없이 오갔다.

지난 주말 막을 내린 서울국제도서전은 여러모로 파리 도서전이 떠오르게 한다. 출판사 개별 부스에서 저자 사인회, 작가와의 만남 등 다양한 행사를 동시다발적으로 마련한 것도 그렇지만 독자들을 위한 축제의 장이라는 콘셉트 자체가 같았다.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전시장으로 들어오기 위해 줄을 길게 서는 낯선 광경이 연출됐고 서점들에선 책이 완판되는 예상치 못한 일도 벌어졌다.

주최사인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올해 관람객은 20만2290여 명으로 지난해에 비해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출판계가 오랜 반목을 넘어 힘을 합해 도서전을 만들자며 나선 데다 ‘책은 중요하니 당연히 지원해줘야 한다’는 수세적 입장에서 벗어나 공세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 준비한 결과이다. 이는 도서전이라는 특정 행사의 성공을 넘어 책을 안 읽는 시대라지만 조금만 친절하게, 재미있게 손을 내밀면 함께할 독자가 많다는 것으로 해석하고 싶다.

도서전 현장에서 독자들이 책을 살피고 저자 사인을 받고, 행복한 표정으로 출판사 직원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보면서 인터넷에서 간단하게 책을 살 수 있는 시대에 사람들이 왜 도서전으로 몰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강렬한 이유 중 하나가 ‘연결’에 대한 욕구가 아닐까 한다. 혼자 읽고, 인터넷에 소감을 올리고, 때론 ‘좋아요’를 받지만 그보다는 작가를 직접 보고, 이야기 나누고,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만든 출판사의 편집자와 얼굴을 맞대고 그들에게 자기가 원하는 책을 추천받고 싶은 연결과 소통의 욕망.

일본의 유명한 북디렉터 하바 요시타카의 ‘빙어낚시 비유’가 생각난다. 그는 요즘 사람들이 책을 포함해 정보를 얻는 방식이, 원하는 장소에 각자 구멍을 뚫는 빙어 낚시와 같다고 했다. 개개인은 곳곳에 움푹움푹 구멍을 만들지만 보이지 않는 얼음 아래 바다는 이어져 있고 다양한 생명이 살아가는 무한한 세계가 펼쳐져 있다는 것이다. 독자들은 도서전 같은 곳에서 책과 책을 둘러싼 넓은 바다를 한눈에 살필 수 있었을 것이다. 책의 역사만큼 오래된 도서전이 수백년을 거쳐 매우 현대적인 공간으로 다시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독자들의 등장에 놀람을 넘어 감동까지 한 출판사들은 이런 열기가 1년 내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건 독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차례 행사가 아니라 독자와의 연결성을 유지하고 때론 폭발시켜 뿔뿔이 흩어진 자신들에게 따뜻하게 말을 걸어주기를 말이다. 이런 것이 바로 문화가 일상이 되는 행복한 삶이 아니겠는가.

chm@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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