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비행기 빨리 타고 싶어. 슈우웅∼.”
매일같이 비행기 나는 흉내를 내면서 가슴 설레하는 아이들을 설득하는 것이 걱정거리였다. 요즘 웬만한 아이들치고 비행기 한 번 타보지 않은 경우가 없기 때문에 아이들은 더 설레는 것 같았다. ‘나도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비행기 탔다고 말하겠다’는 자랑거리가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큰딸 지윤(8)이와 아들 시윤(6)이 엄마(익명 희망)는 아이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를 두고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 그만큼 아이들의 기대가 컸던 가족여행이었음을 모르지 않아서였다. 6개월을 차곡차곡 모았던 ‘희망’인데, 그걸 포기하는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정말 ‘번민’의 연속이었다.
평범한 가족인 지윤이네는 지난해 여름휴가를 동남아 해외여행을 가기로 했다. 네 가족이 가는 첫 해외여행이었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부부 역시 가족여행에 대한 기대에 들떠 있었다. 지윤이 엄마는 지난해 1월부터 빠듯한 생활비를 아껴 조금씩 조금씩 저축을 해 나갔다.
이런 휴가였는데, 지윤이네는 끝내 가족여행을 가지 못했다. 가족의 첫 해외여행을 위해 차곡차곡 모았던 수백만 원을 불우한 어린이들을 위해 기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이 될 것 같아 해외여행을 결정했어요. 학교와 유치원에서 해외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이 종종 작은 기념품을 선물로 주곤 하는데 아이들은 그게 못내 부러웠나 봐요. 기대했던 여행을 포기하는 건 우리 부부에게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어요. 아이들은 오죽했겠어요. 그런데, 아이들 스스로 좋은 결정을 해 줘서 정말 대견해요.”
지윤이 엄마는 21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들의 의견을 잘 따라 준 아이들에게 너무 고맙다며 환하게 웃었다. 일이 많아 퇴근이 늦은 남편은 늦은 시간에도 아이들 목욕은 꼭 자기 손으로 해 줄 만큼 자상한 아빠였다. 그런 남편이 어느 날 밤, 힘들게 말을 꺼냈다. 해외여행 대신 아이들 이름으로 기부를 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가족의 첫 해외여행이라는 기대도 컸지만, 저도 내심 이런저런 광고에서 봤던 어리고 아픈 아이들이 항상 마음에 걸렸던 거 같습니다. 좋은 생각이라고 동의했죠.” 지윤이 엄마는 남편의 제안에 흔쾌히 동의했지만, 문제는 아이들이었다.
“도움이 필요한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먼저 설명했어요. 우리가 도움을 주면 그 친구들에게 힘이 된다는 걸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알려주려고 노력했어요. 도움을 주려면 해외여행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지윤이가 먼저 엄마 아빠의 제안을 별 고민 없이 받아줬다. 누나가 결정을 내리자 동생 시윤이도 좋다고 했다. 시윤이는 “그럼, 아빠 차도 주고 우리 통장도 다 주자”고 말해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사실 지윤이 엄마는 불우아동에 대한 기부활동을 16년째 해 오고 있는 ‘자선가’이다. 비록, 많은 돈은 아니지만 매달 생활비에서 조금씩 떼어내 불우한 어린이를 위해 기부하고 있다.
“대학 시절에 학점을 받기 위해 봉사활동을 다녀온 적이 있었어요. 교양과목 1학점을 따기 위해 갔다 온 활동이었는데, 체력이 약한 저에게는 육체적으로 너무 힘든 일이었어요.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육체적인 봉사는 무리인 것 같다고 생각했죠. 차라리 기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취직하면서 기부활동을 하기 시작했죠.”
지윤이·시윤이의 기부활동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윤이 첫돌잔치와 시윤이 백일잔치 때 받은 축의금을 모두 기부한 것이다.
지윤이 엄마는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에게 봉사정신을 가르쳐 주고 싶었습니다. 너희가 어려운 사람을 위해 기부하려면 너희가 열심히 살아야 하고, 그렇게 조금씩 베풀며 살다 보면 나중에 더 많은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죠. 그런 교육 때문이지, 지윤이는 나중에 어려운 환경의 친구들에게 영어 같은 걸 가르쳐 주겠다고 해요. 기부라는 게 스스로 마음이 움직여야 가능한 것이고, 그런 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자존감도 키우고 남을 생각하는 마음의 문을 스스로 여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임대환 기자 hwan9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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