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윤(오른쪽), 시윤 남매가 21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자택에서 사이좋게 책을 읽고 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제공
지윤(오른쪽), 시윤 남매가 21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자택에서 사이좋게 책을 읽고 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제공
16년째 불우어린이에 사랑 베푸는 지윤이네 가족

“엄마, 나 비행기 빨리 타고 싶어. 슈우웅∼.”

매일같이 비행기 나는 흉내를 내면서 가슴 설레하는 아이들을 설득하는 것이 걱정거리였다. 요즘 웬만한 아이들치고 비행기 한 번 타보지 않은 경우가 없기 때문에 아이들은 더 설레는 것 같았다. ‘나도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비행기 탔다고 말하겠다’는 자랑거리가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큰딸 지윤(8)이와 아들 시윤(6)이 엄마(익명 희망)는 아이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를 두고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 그만큼 아이들의 기대가 컸던 가족여행이었음을 모르지 않아서였다. 6개월을 차곡차곡 모았던 ‘희망’인데, 그걸 포기하는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정말 ‘번민’의 연속이었다.

평범한 가족인 지윤이네는 지난해 여름휴가를 동남아 해외여행을 가기로 했다. 네 가족이 가는 첫 해외여행이었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부부 역시 가족여행에 대한 기대에 들떠 있었다. 지윤이 엄마는 지난해 1월부터 빠듯한 생활비를 아껴 조금씩 조금씩 저축을 해 나갔다.

이런 휴가였는데, 지윤이네는 끝내 가족여행을 가지 못했다. 가족의 첫 해외여행을 위해 차곡차곡 모았던 수백만 원을 불우한 어린이들을 위해 기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이 될 것 같아 해외여행을 결정했어요. 학교와 유치원에서 해외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이 종종 작은 기념품을 선물로 주곤 하는데 아이들은 그게 못내 부러웠나 봐요. 기대했던 여행을 포기하는 건 우리 부부에게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어요. 아이들은 오죽했겠어요. 그런데, 아이들 스스로 좋은 결정을 해 줘서 정말 대견해요.”

지윤이 엄마는 21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들의 의견을 잘 따라 준 아이들에게 너무 고맙다며 환하게 웃었다. 일이 많아 퇴근이 늦은 남편은 늦은 시간에도 아이들 목욕은 꼭 자기 손으로 해 줄 만큼 자상한 아빠였다. 그런 남편이 어느 날 밤, 힘들게 말을 꺼냈다. 해외여행 대신 아이들 이름으로 기부를 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가족의 첫 해외여행이라는 기대도 컸지만, 저도 내심 이런저런 광고에서 봤던 어리고 아픈 아이들이 항상 마음에 걸렸던 거 같습니다. 좋은 생각이라고 동의했죠.” 지윤이 엄마는 남편의 제안에 흔쾌히 동의했지만, 문제는 아이들이었다.

“도움이 필요한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먼저 설명했어요. 우리가 도움을 주면 그 친구들에게 힘이 된다는 걸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알려주려고 노력했어요. 도움을 주려면 해외여행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지윤이가 먼저 엄마 아빠의 제안을 별 고민 없이 받아줬다. 누나가 결정을 내리자 동생 시윤이도 좋다고 했다. 시윤이는 “그럼, 아빠 차도 주고 우리 통장도 다 주자”고 말해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사실 지윤이 엄마는 불우아동에 대한 기부활동을 16년째 해 오고 있는 ‘자선가’이다. 비록, 많은 돈은 아니지만 매달 생활비에서 조금씩 떼어내 불우한 어린이를 위해 기부하고 있다.

“대학 시절에 학점을 받기 위해 봉사활동을 다녀온 적이 있었어요. 교양과목 1학점을 따기 위해 갔다 온 활동이었는데, 체력이 약한 저에게는 육체적으로 너무 힘든 일이었어요.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육체적인 봉사는 무리인 것 같다고 생각했죠. 차라리 기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취직하면서 기부활동을 하기 시작했죠.”

지윤이·시윤이의 기부활동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윤이 첫돌잔치와 시윤이 백일잔치 때 받은 축의금을 모두 기부한 것이다.

지윤이 엄마는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에게 봉사정신을 가르쳐 주고 싶었습니다. 너희가 어려운 사람을 위해 기부하려면 너희가 열심히 살아야 하고, 그렇게 조금씩 베풀며 살다 보면 나중에 더 많은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죠. 그런 교육 때문이지, 지윤이는 나중에 어려운 환경의 친구들에게 영어 같은 걸 가르쳐 주겠다고 해요. 기부라는 게 스스로 마음이 움직여야 가능한 것이고, 그런 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자존감도 키우고 남을 생각하는 마음의 문을 스스로 여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임대환 기자 hwan91@munhwa.com
임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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