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겸 동국대 법과대 교수 헌법학

2009년 신영철 당시 대법관의 ‘촛불 재판’ 개입 사건 이후 8년 만에 19일 전국 법관대표회의가 개최돼 이른바 ‘법관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 추가 조사를 결의했다. 그런데 이 사건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3월 대법원이 자체 진상조사단을 구성, 조사를 마쳤다. 이 법관회의의 결정에 대해 사법부 내부에서는 갑론을박(甲論乙駁)이 계속되고 있다.

이번 논란의 쟁점은 블랙리스트로, 법원행정처가 일선 법관들의 개인 성향과 동향 정보를 수집하고 대법원에 비판적인 성향의 판사 명단을 만들어 관리했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법원행정처가 법원 내 학술단체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학술대회 축소를 위해 부당한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법원의 조사 결과는 인권법연구회에 대한 부당한 압력은 있었지만 사법부 블랙리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블랙리스트는 용어 자체가 불신과 부정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이런 논란 자체가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더 확산시킨다.

국가권력 중에서도 사법부는 국민의 인권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이면서, 법치국가를 실현하는 데 중요한 기본권인 재판청구권을 보장하는 책무를 수행하는 국가 기관이다. 이런 사법부가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면, 국민의 권익 보호 측면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헌법이 법원의 독립과 법관의 독립을 보장하는 것은 그만큼 재판 업무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물론 법관이 단지 재판만 담당하는 사법 공무원은 아니다. 법원도 국가 조직이기 때문에 헌법과 법률에 따라 조직을 구성하고 운영하므로 법관은 행정 업무도 수행해야 한다. 법관은 사법부에 속한 공무원으로, 재판 외에도 행정 업무를 담당할 수 있다. 또한, 법관도 공무원이기는 하지만 능력의 개발과 자신의 발전을 위해 연구도 할 수 있고, 연구회를 조직해 활동할 수도 있다. 이런 활동이 법관의 책무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제약을 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법관들이 활발하게 연구 모임을 갖는 것이 사법부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서 논란은 블랙리스트 사건의 재조사 요구뿐만이 아니다. 이를 위한 전국 법관대표회의의 구성에서도 인권법연구회 소속 법관이 다수라는 점과 조사를 위한 소위원회의 구성이 거의 유사하다는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또한, 이에 대해 법원 내부에서 구성의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대법원장의 소집 요구에 따라 사법부 내에서 일정한 절차에 따라 했다면 구성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구나 사법부가 민주적 논의와 절차를 무시하고 전국 법관대표회의를 구성했다면 우선 법관들이 이를 묵인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논란을 벌이는 것은 사법부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블랙리스트의 존재에 대해서는 한 점 의혹도 없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다시 원점에서부터 철저하게 조사를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법관회의가 직접 재조사를 하기보다는 법적 권한을 가진 공식 기구가 하는 게 바람직하다. 법관도 집단적으로 의사를 표현할 수 있지만, 미리 정해진 특정 목적 관철을 위한 ‘떼법’식의 집단행동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리고 이번 사건에서도 보듯이 사법부 개혁은 계속돼야 한다. 그러나 그 개혁은 국민의 입장에서 국민을 위한, 합법적인 절차에 따른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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