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준 논설위원

“북극해를 장악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 최근 많은 지정학 이론가가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북극해 면적은 약 1400만㎢로 오대양 가운데서 가장 작다. 그러나 1700만㎢인 러시아 전체 면적과 맞먹는 크기다. 물론 북극해의 중요성은 면적 크기 때문이 아니다. 우선 북극 항로가 수에즈 항로·파나마 항로와 함께 ‘세계 3대 물길’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로테르담 노선의 경우, 수에즈 항로를 이용하면 2만1000㎞로 24일 소요되나, 북극 항로를 이용하면 1만2700㎞로 14일 만에 도달할 수 있다. 캐나다에서 중국으로 물자를 나를 때도 북극 항로를 이용하면 파나마 운하를 이용하는 것보다 거리가 40% 정도 단축된다.

거리상의 이점에도 불구하고 빙하 때문에 북극해는 경비가 많이 소요되고 위험한 항로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로 북극 빙하가 줄어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쇄빙선과 내빙선 기술의 비약적 발전에 따라 북극해 항로가 점차 경제성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러시아 연안을 지나는 북동항로의 경우, 과거엔 길어야 1년에 2개월 정도 이용할 수 있었으나, 현재는 7월부터 10월까지 약 4개월 동안 이용이 가능하며, 그 기간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또, 전 세계 자원의 22%로 추정되는 북극과 그 주변의 막대한 지하자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석유의 13%, 천연가스의 30%가 북극에 매장돼 있다고 추정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북극에 매장된 자원의 가치는 약 30조 달러에 이른다는 보고서를 내놓은 상태다. 과거엔 접근이 어려워 ‘그림의 떡’이었으나, 항로 개척이 활발해지면서 19세기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서의 골드러시에 빗대 ‘콜드러시(Cold Rush)’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여러 국가가 1만t급 이상의 대형 첨단 쇄빙선을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독일은 2020년 출항 목표로 3m 이상의 얼음을 깰 수 있는 2만7000t급 폴라르슈테른2를 건조하고 있으며, 영국은 2019년 취항 목표로 2m 얼음을 깰 수 있는 1만5000t급 D 애튼버러경 호를 건조하고 있다. 1993년 우크라이나에서 쇄빙선 쉐룽(雪龍)호를 구입해 운용하고 있는 중국도 2019년 취항을 목표로 1.5m 얼음을 깰 수 있는 1만4000t급 쇄빙선 자체 제작에 나섰다. 그동안 주저하던 일본도 이에 질세라 1.5m 얼음을 깰 수 있는 1만t급 쇄빙선을 내년부터 제작해 2021∼2022년경에 취항시킬 예정이다.

이같이 북극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이 곳이 새로운 국제 분쟁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북극 연안국은 미국·러시아·노르웨이·캐나다·덴마크 등 5개국인데, 1982년 제정된 유엔 해양법은 북극해에 대한 개별국가 주권은 인정하지 않는 대신, 연안국의 200해리 경제수역만 인정하고 있다. 이에 5개국은 2008년 북극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유엔의 틀 안에서 협상을 통해 결정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대륙붕에 대한 논란 등으로 쉽게 타결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러시아는 최소 6000명으로 구성된 ‘북극군(軍)’을 무르만스크 지역에 배치하고 있으며, 스노모빌과 공기부양선으로 무장한 기계화 보병 여단 2개를 조직하고 있다. 그리고 2014년 15만5000명 병력과 탱크·전투기·군함을 동원한 대규모 군사 훈련을 실시했다. ‘미주리’란 가상 적국이 어느 아시아국과 함께 추코트카·캄차카·쿠릴·사할린에 침공한 것을 가상한 것에 대비한 기동훈련이었다. 여기서 미주리와 어느 아시아국이 어느 나라인지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현재 가장 강력한 쇄빙선 함대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는 러시아다. 6척의 핵 추진 쇄빙선을 포함, 30여 척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다른 북극 연안 국가들도 북극 전력(戰力) 강화에 나서고 있다. 캐나다는 2018∼2022년 사이에 쇄빙능력을 갖춘 전투함 5척을 새로 실전 배치할 예정이며, 덴마크도 ‘북극 대응군’을 조직해 맞서고 있다.

한국은 2009년 6월 7000t급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를 진수했다. 2013년 5월엔 북극이사회(Arctic Council)의 정식 옵서버국이 됐다. 일단 발은 담근 셈이다. 2013년 시범 사업을 포함해 지난해까지 5건의 북극 항로를 통한 화물선 운항 경험도 쌓았다. 그런데 아라온호 1척으론 남극 연구에도 벅찬 상황이다. 얼음 깨는 능력도 부족하다. 얼음 1.5∼2m를 깰 수 있는 1만2000t급 쇄빙선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으나, 예산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움직이는 세계사의 흐름에 주목해야 한다. 한때 지중해의 강자로 번영을 누리던 베네치아도 대서양 시대를 따라잡지 못해 몰락했다. 잘 활용하면 북극 항로는 한국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북극해는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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