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 지원에 관한 법률’이 지난 5월 30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전 정신보건법(1997년 제정)이 전면 개정된 법이다.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을 강제로 입원시키는 절차가 까다로워졌고, 퇴원하는 사람이 지역사회에서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법적 근거가 추가됐다. 이 법의 시행을 두고 사회 일각에서는 ‘퇴원 대란’과 ‘사회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그동안 미루고 미루다 막다른 골목에서 재회한, 정신질환자의 사회 복귀와 통합이라는 과제를 벼락치기로 수행하는 시점이라 하겠다.
한국의 경제적 위상은 상위권에 진입했으나 정신건강 서비스 주요 지표는 상대적으로 초라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정신건강이 개인의 안녕과 사회 발전에 미치는 영향이 중대함을 인식하고 전 세계 170여 개국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서비스 통계를 받아 모니터하고 있다. 한국은 높은 정신장애인 강제입원율(61.6%)이나 장기화한 정신병원 재원일수(167일)에서 보듯이, 정신건강 서비스 지표에서는 하위권이다.
서구 선진국들은 1970년대부터 정신건강 서비스의 방향을 격리와 수용 위주의 입원 치료에서 지역사회 중심의 돌봄과 사회통합으로 대폭 전환해 왔다. 최근엔 신체와 정신건강 서비스 체계를 유기적으로 연결함으로써, 정신건강 서비스 접근을 촉진하는 전략을 적극적으로 구사하고 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정신장애인들이 직접 정신건강 정책 수립과 서비스 전달 과정에 참여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함으로써 이용자 관점을 반영한 서비스 제공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필자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신장애인은 일반인뿐 아니라 다른 유형의 장애인과 비교해도 훨씬 열악한 상황이다. 정신장애인은 다른 유형의 장애인에 비해 주거·소득·고용 부문에 있어 낮게는 30∼50%에서 높게는 9%까지 취약하고 불평등한 상황이다. 유럽에서는 지난 수십 년간 정신장애인 삶의 전 영역에 걸쳐 발생하는 사회적 배제와 불평등을 줄이는 데 집중해 왔고 최근에는 사회 구성 주체로서 정신장애인의 권리 행사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정신장애인의 존엄권·평등권·자유권·사회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지역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지역사회 인프라 구축이 필수다. 주거와 생계, 교육과 고용, 사회 참여와 옹호에 이르는 포괄적 서비스가 지역사회에 뿌리내려야 한다. 무엇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재정적 뒷받침이 요구된다.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당한 환자의 상당수는 오랫동안 반복된 격리와 수용의 고리에 놓여 있었다. 병원에서 퇴원한 환자가 이 같은 악순환에서 벗어나 본인이 가진 잠재력을 실현하고 사회에 이바지하는 구성원으로 살아가려면, 안정된 주거 확보가 그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다.
한 나라 인권 의식 수준은 정신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처우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경제적 발전을 이루고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수차례 이뤄냈다. 그러한 국격과 국민 자존심에 걸맞는 정신건강 서비스의 실현에 눈을 돌려야 할 때다. 이제 막 시행된 정신건강복지법. ‘기회가 평등한 세상, 과정이 공정한 세상, 결과가 정의로운 세상’을 표방하는 새 정부의 손길이 이 법의 순조로운 출발에 박차를 가하길 기대한다. 향후 정신건강복지법의 지속적인 발전은 정신건강 돌봄에 가치를 두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국민 의지의 성숙과 정부의 진취적 화답의 협업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