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회평 논설위원

미국 프린스턴대 신학과 학생들에게 ‘착한 사마리아인’을 주제로 설교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각자 준비한 설교를 할 건물로 이동해야 했는데, 시간이 촉박했다. 반드시 지나야 하는 곳에 아픈(역할을 하는) 사람을 눕혀 놓았다. 설교 내용과 직결되는 상황 설정이었다. 그러나 많은 학생 중 단 한 명만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고, 아픈 사람을 타 넘고 간 학생도 있었다.

임상심리학자인 매들린 L 반 헤케가 ‘블라인드 스팟’(2007)에서 누가 봐도 모순인데 자신만 모르는 사례로 인용한 실험이다. 자동차 사이드미러에 보이지 않는 영역이 블라인드 스팟(Blind Spot), 곧 맹점(盲點)이다. 헤케는 주관적 편견, 패턴에 갇힌 사고, 익숙함의 함정 등 자신이 못 보는 10가지 유형의 맹점을 보여준다. 맹점은 사람이 평생 자기 모습을 직접 볼 수 없는 데서 생긴다. ‘물이 있다는 사실을 가장 나중에 알게 되는 건 물고기’라는 속담처럼, 남의 눈에는 빤한 것도 예사로 놓친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력서에 학벌·출신지·신체조건을 배제하는 공공부문 ‘블라인드 채용’을 지시하면서 민간 기업의 협조도 구했다. 고정관념을 벗고 실력으로 승부한다면 블라인드 스팟을 극복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채용 주체인 기업들은 난감한 표정이다. 삼성그룹이 1990년대 출생지·가족관계 등을 이력서에 기재하지 않기로 한 이후 기업들은 적잖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일률적인 블라인드 채용으론 개별 기업이 원하는 인재 확보가 불가능하다는 게 대체적인 결론이다. 벌써 블라인드 채용 대비 사교육 업체들이 움직이고 있다.

시중의 관심은 오히려 문 대통령 자신의 채용 방식이다. 문 정부와 함께할 장관(후보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위법·비리·추문·표절 의혹으로 얼룩졌다. 문 대통령이 내걸었던 ‘인사 배제 5대 원칙’은 진작 휴지통으로 들어갔다. ‘블라인드 지명’한 것이냐는 비아냥이 나온다. 여기에 블라인드 스팟의 한 유형이 숨어 있다. 과거라면 낙마했을 흠결이라도 ‘선한’ 일을 하는 새 정부라면 그 잣대가 달라야 한다고 믿는 것일까.

어느 장관 후보자는 “일반 국민은 이해하기 어려운 그런 세계가 있다”고 했다. 집권세력의 처신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정부와 다른 의견에는 날 선 공격을 일삼으면서도, 인사 참사를 지적하는 여론에는 블라인드를 치고 귀를 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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