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재인 정부의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통신비 인하 방안을 발표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당초 대선 공약이었던 기본료 일괄 폐지는 유보하는 대신, 휴대전화 약정 기간 요금 할인 비율을 현행 20%에서 25%로 확대하고, 현재보다 1만 원 저렴한 요금제 출시 등을 제안했다.
사실, 통신비 인하는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정치권의 단골 공약 메뉴였다. 통신비가 가계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요금 체계에 대한 불만이 많기 때문이다. 경제개발연대 초기부터 서민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각종 생필품과 공공요금은 정부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인상을 억제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행정 규제라는 방법으로 목욕료·이발료부터 자장면과 채소 가격까지 수많은 품목이 정부의 강력한 통제 아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선진국 문턱에 와 있는 이 시점에 과연 이러한 방식의 가격 통제 또는 규제가 바람직한지 재검토해야 한다.
가격의 통제가 소비자와 국민의 생활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독과점적 지위를 이용해 재벌 대기업이 과도한 이익을 취하는 것을 견제한다는 점에서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정책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폐해와 문제점은 지대하다. 결과적으로 그 폐해가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시장경제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우선, 어떤 가격이 적정한지부터 논란의 대상이 된다. 가격이 낮을수록 소비자들은 환영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가격을 낮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산에는 비용이 들고 누군가가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통신비도 우리나라 요금 수준이 적정 수준에 비해 얼마나 높은지는 논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치보다 낮다는 조사 결과도 있지만, 소득 수준을 고려한 상대적 요금은 최고 수준이라는 반대 주장도 있다.
통신회사의 영업이익이 과도한지도 논란의 대상이 된다. 통계 자료와 이론적 분석에 기초한 합리적인 판단이 이뤄진다면 문제가 없을까? 사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토론을 통해 합의에 도달하는 성숙한 절차가 확립돼 있다면 누가 더 설득력 있는 논리를 제시하느냐에 따라 결론 날 것이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가치관에 따른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그뿐만 아니라, 객관적인 해답이 없으므로 정치인과 관료의 자의적인 판단의 여지가 있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데 가격 결정과 경제적 자원 배분은 본질적으로 수많은 사람의 개별적인 정보와 의사결정의 복합적인 결과이므로 정치인과 관료의 자의적 판단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경제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시장경제 300년의 역사가 보여준다.
게다가 우리의 정치 현실은 어떤가? 한편에는 서민과 약자의 이익을 우선시하면 정의이고 재벌과 대기업의 이익을 옹호하면 부정의라는 이분법으로 세상을 보는 정치집단이 있고, 또 한편에는 기득권을 대변하기에 급급한 정치집단이 대립하고 있다. 여기에 행정 권한과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관료 집단은 관련된 소비자와 기업의 이익을 결정하는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된다. 이 권력이 강력할수록 권력 남용은 불가피하게 된다. 특히, 자신만이 옳고 정의의 편이라고 생각하는 편협과 독선의 정치가 횡행할 때 합리적인 의사결정은 불가능해지고 힘의 논리에 의존하는 권력투쟁에만 몰두하게 될 것이다.
물론 시장도 완전하지 않다. 독과점 시장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지도 못하고 정의롭지도 못하다. 이것을 시장의 실패라고 한다. 시장은 공정한 규칙과 엄정한 법 집행 이래에서만 작동한다. 통신비의 경우, 담합이나 반경쟁적 행동으로 독과점적 지위를 남용해 과도한 요금을 유지하고 그에 따른 막대한 독과점적 이익을 통신사업자 등이 가져간다면 그것은 경쟁이 충분하지 못하고 규칙이 불공정하기 때문이다. 통신료를 직접 정부가 결정할 게 아니라, 담합 등 불공정하고 경쟁 제한적인 행위를 엄격히 단속하는 데서 정부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정경유착과 같이 불공정한 정부 개입이 근절될 뿐 아니라, 가격통제와 같은 선의의 정부 개입도 극복될 때, 시장과 정부의 올바른 역할 부담이 확립되고 우리 경제가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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