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권 경제평론가, 前 자유경제원장

문재인 정부의 시장경제에 대한 불신이 도를 넘었다. 대선 공약을 보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시장경제 기능 자체를 부정하는 듯하다. 특히,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나온 발언을 보니 걱정이 앞선다.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는 닭고기 값이 비싸다며 원가(原價)공개 추진을 얘기했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는 투기로 인해 아파트 가격이 높다며 원가공개를 제시했다. 이런 분위기에 맞춰 미래창조과학부는 통신비 원가공개를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보고했다. 닭고기·아파트·통신은 서로 다른 재화(財貨)지만, 정책 방향은 모두 원가공개를 통해 시장가격을 규제하겠다는 것이다. 시장가격의 기능을 이해하지 못한 정책 처방이다.

시장경제에는 하나의 가격만이 존재한다. 바로 ‘시장가격’이다. 시장가격은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 수요와 공급에 의해 역동적으로 변하는데, 공급보다 수요가 높으면 시장가격은 올라간다. 시장가격이 높다고 생각하는 수요자는 소비를 억제하므로, 다시 수요가 떨어지면서 시장가격도 낮아지게 된다. 그러나 일부 장관 후보는 원가보다 높은 가격은 기업의 횡포라고 생각한다. 시장가격은 원가와 무관하다. 단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될 뿐이다. 수요가 높은 경우 기업가는 원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으로 이윤을 얻을 수 있다. 모든 기업가는 원가보다 높은 가격을 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는 수요자의 마음을 사로잡아야만 가능하다.

스티브 잡스가 개발한 아이폰은 원가보다 훨씬 높은 시장가격이었지만 수요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때문에 아이폰 가격에 대해 누구 하나 원가 시비를 걸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모델이 출시될 때마다 서로 사려고 경쟁한다. 그 결과 잡스는 4조 원의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또한, 기업가의 성공과 함께 소비자는 새로운 차원의 문명을 영위할 수 있게 됐다. 이게 시장경제의 원리다.

모든 기업가는 원가보다 훨씬 높은 시장가격을 원한다. 그러나 기업가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소비자들은 재화의 원가를 따지지 않고, 이 재화를 소비함으로써 본인의 얻게 되는 행복감이 시장가격보다 높을 때 기꺼이 소비를 선택할 뿐이다. 하지만 시장경제에 무지한 사람들은 원가공개를 쉽게 얘기한다. 원가 산정은 쉬운 일이 아니다. 원가에는 기업의 오랜 지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선 많은 자본과 노동이 투입된다. 개별 재화의 원가를 총 자본과 노동에서 분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한, 특정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선 수십 년 동안 연구·개발(R&D) 투자가 있어야 한다. 이를 모두 고려한 원가계산은 거의 불가능하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기업은 항상 경쟁해야 한다. 경쟁은 상품경쟁뿐 아니라, 가격경쟁도 포함된다. 똑같은 상품을 생산한다고 해도, 좀 더 낮은 비용으로 생산하기 위해 원가경쟁을 한다. 원가에는 이런 기업의 고유 지식이 담겨 있다. 따라서 정부가 기업에 강제적으로 원가를 공개하게 하는 것은 재산권 침해이며 기업 간 경쟁을 억제하게 된다.

시장가격이 높다는 것은 공급보다 수요가 많다는 신호다. 닭고기 가격이 상승하면, 수요가 떨어지고, 공급이 많아진다. 그래서 시장가격은 다시 떨어진다. 정부가 원가공개라는 반(反)시장 정책으로 개입해선 안 된다.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는 것은 공급보다 수요가 높기 때문이다.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처럼 문 정부도 아파트 가격 상승의 원인을 부자들의 투기 때문으로 진단하고 있다. 그래서 투기 수요만 억제하면 가격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면 공급을 늘리는 정책을 펴는 것이 경제논리에 충실한 방향이다. 공급을 도외시하고 부자들의 투기 방지만을 위한 정책을 추진했을 때 아파트 가격이 오히려 폭등한 과거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정책 중에서, 경제에 가장 치명적인 정책은 시장가격을 규제하는 것이다. 시장가격은 공급자와 수요자들에게 끊임없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 시장가격을 보고, 기업은 투자 결정을 하고, 소비자는 소비 결정을 한다. 이러한 자생적인 질서를 무시하고, 정부가 원가와 연동해서 시장가격을 규제하려는 치명적 오류를 범해선 안 된다. 원가공개 같은 반시장적 정책으론 현실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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