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는 1870년 이후 현재까지 미국의 경제성장을 다룬 책이다. 밀도 높은 자료와 엄밀한 분석을 바탕에 깔고 썼지만, 보통의 역사책처럼 술술 읽히는 장점이 있다. 저자에 따르면,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경제성장은 다소의 등락을 거치면서 우상향으로 올라가는 점진적 그래프를 보이지 않는다. 경제성장은 거대한 도약이 일어나는 시기와 미미한 변화밖에 일어나지 않는 둔화의 시기가 따로 있다.
미국의 경우, 1770년까지는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미미한 성장밖에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177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다음 100년 동안, 미국은 부지런히 유럽 국가들을 따라잡았다. 영국에서 시작된 동력혁명, 즉 증기기관과 함께 이룩한 1차 산업혁명의 대열에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애썼다. 하지만 변화는 점진적이었고, 사람들의 생활수준은 여전히 중세와 별다를 게 없었다.
그다음 100년 동안 미국이 보여준 길은 눈부시다. 저자는 이 시기를 ‘위대한 세기’라고 부른다. 역사상 ‘두 번 다시 있을 수 없는’ 비약적인 경제성장이 미국에서 나타난 것이다. 1869년 대륙횡단철도가 개통된다. 미국에서 이 사건은 1차 산업혁명의 완성을 뜻한다. 1844년 미국에서 발명돼 정보혁명을 가져온 전신이 하나로 합쳐져 비로소 미국은 시공간적으로 하나의 국가가 된다. 전기, 수도, 하수도, 가스, 전화 등의 네트워크 혁명, 즉 제2차 산업혁명을 거대한 대륙 전체에 실현한 것은 미국이다. 이 시기에 미국인의 생활수준은 완전히 혁신되고, 경제성장의 그래프가 극적으로 가팔라진다.
그렇다면 경제성장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일반적인 지표로 사용하는 국내총생산(GDP) 대신에 총요소생산성(TFP, Total Factor Productivity)으로 파악한다. 생산량을 늘리는 것은 간단하다. 노동이나 자본의 투입량을 늘리면, 생산량은 비례해서 늘어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노동 및 자본의 투입량보다 생산량이 증가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것이 바로 생산성이다. 자본과 노동 이외의 어떤 요소, 가령 의료, 교육, 환경 등의 요소가 생산량을 증가시킨 것이다. 이 지표를 사용하면, 노동과 자본의 변화를 넘어서 ‘삶의 질’에 해당하는 것들, 가령 안전하고 평등한 사회, 하고 싶지 않은 일의 감소 등과 같은 요소들을 경제성장을 측정하는 데 포함할 수 있다. 즉 경제성장이란 단지 부의 증가만이 아니라 생활수준의 전반적 향상을 가리킬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관점에서 전기혁명이 주도한 ‘위대한 시기’와 정보혁명이 이끄는 1970년 이후의 시기를 비교한다. 그 결과는 정보혁명의 완패다. 1920년에서 1970년까지 총요소생산성은 연평균 1.89% 성장했지만, 1970년 이후에는 연평균 0.64%에 그친 것이다. 인터넷, 더 나아가 로봇과 인공지능은 분명히 사람들이 일하고 생활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지만, ‘위대한 세기’가 일으킨 성장혁명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위대한 세기에 이룩된 일은 다음과 같다. 옷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옷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전에는 가정에서 옷을 직접 만들어 입었지만, 이제 사람들은 백화점이나 카탈로그 등을 통해 옷을 ‘구매해서’ 입게 됐다. 주택은 어떨까. 이전까지 어두침침한 집에서 직접 우물물을 길어 물을 조달하고 땔감을 구해 난방을 하던 사람들은 이제 전기, 수도, 하수도, 가스, 전화 등 네트워크로 연결된 집에서 살아간다.
시간차는 있겠지만 이러한 공공네트워크는 결국 부나 지위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 모든 지역에 평등하게 공급되고 삶의 질을 상향 평준화한다. 자동차가 발명되어 대중화됐고, 가전제품이 여성들을 가사에서 해방시켜 직장생활을 증가시켰고, 의학기술의 발명에 따라 기대수명이 거의 두 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줄지은 혁신 중에서 오늘날 우리의 삶을 규정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생활수준의 향상이 이처럼 극적으로 일어난 시기는 역사상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꾸준한 혁신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다. 미국의 성장은 과거에 비해 크게 둔화됐다. 사회 전 분야에서 현대적 생활수준을 결정하는 많은 요소들이 이미 갖추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제성장을 장기적으로 가로막는 역풍마저 심하게 불고 있다. 하위 99%의 가처분소득이 줄어드는 불평등의 심화, 20세기 내내 상승했던 국민 교육수준의 정체 또는 후퇴, 늘어나는 은퇴인구와 줄어드는 생산연령 비율, GDP 대비 연방부채 비율의 기록적 상승 등이 그것이다. 그에 대한 대책으로 저자는 누진세, 최저임금 등 결과의 평등을 보장하고, 교육혁신을 통해 기회의 평등을 확대하며, 이민 정책의 전환과 세제 개혁을 통해 인구 및 재정 문제를 해소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니 ‘한강의 기적’이라는 압축적 근대화를 이루고 난 후,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는 한국 경제가 자꾸 생각났다. 새 정부의 지도자들이 여름휴가를 갈 때 충분히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책이다.
장은수 출판평론가
주요뉴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