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전직 외교관이면서 ‘아직’ 정치인이기도 하다. 40년에 가까운 외교관 생활을 정리하고 지난 2012년 19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서울 강남을의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해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하지만 의정 생활 4년간 그는 정치인으로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기지 못했다. 20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바른정당으로 당적을 바꿨지만 현역 정치인들과의 교류를 거의 끊었다. 그에게 정치는 좋은 추억이 아니다. 김 전 본부장은 “정치, 어렵더라. 정치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하던데 동감한다”면서 “외교관은 정치와 안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수 진영에 대한 고민은 계속하고 있다. “보수가 이렇게 지리멸렬해진 것은 대통령 탄핵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동안 정책적 대응이 미흡했던 점이 컸다”며 “자본주의 사회 곳곳에서 양극화가 심해지는데도 진보 진영과는 달리 보수는 아무런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대구 출신으로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김 전 본부장은 통상 분야 전문 외교관으로서 비교적 탄탄대로를 달렸다. 하지만 ‘정무’와 ‘통상’으로 나뉜 외교부에서 ‘통상’ 외교관이 크게 빛날 공간이 많지 않았다. 2005년 열린 부산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위한 준비팀에 차출되면서 인생의 전환이 시작된다. 김 전 본부장의 꼼꼼하면서도 강단 있는 업무 추진 능력을 눈여겨본 청와대의 한 고위 인사는 “우리나라에 이런 외교관이 있었느냐”고 극찬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곧바로 2006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수석 대표로 전격 기용했고, 2007년엔 성공적인 한·미 FTA 협상의 공을 인정받아 장관급인 통상교섭본부장에 발탁되게 된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깡다구’가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 담임 선생님이 모멸적으로 귀를 잡아당기고 뺨을 때리는 체벌을 가하면 어김없이 저항했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이런 ‘깡’이 거친 한·미 FTA 협상을 타결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지만 때론 사회생활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낳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깡’ 덕분에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산악 오토바이와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익스트림 스포츠’ 마니아가 됐다.
지난 4일 오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 장소에 나타난 그는 낡을 대로 낡은 작은 손가방을 들고 왔다. 1984년도에 서울 아시안게임(86)·서울 올림픽(88) 조직위원회에 차출되면서 받은 기념품이었다. 그 가방을 열었더니 지갑, 휴대전화, 동전, 감기약, 집 열쇠 등이 쏟아졌다. ‘왜 아직도 버리지 않고 가지고 다니냐’는 질문에 김 전 본부장은 “찢어진 데 없고 편해서”라고 짧게 답하며 웃었다.
김만용 기자 mykim@munhwa.com
△대구 △연세대 △제8회 외무고시 합격 △주프랑스대사관 3등 서기관 △주캐나다대사관 참사관 △외무부 의전담당관 △주미대사관 참사관 △주제네바 공사 △외교통상부 지역통상국장 △샌프란시스코 총영사 △APEC 고위관리회의 의장 △한·미 FTA 협상 한국 측 수석대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제19대 국회의원(서울 강남을/새누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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