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병태와 영철이 다니는 학교 장면은 대부분 경희대 교정에서 촬영됐다. 경희대의 석조건물은 거대하고 차가운 이미지로 권위적 대학문화를 상징하고 있다.
주인공 병태와 영철이 다니는 학교 장면은 대부분 경희대 교정에서 촬영됐다. 경희대의 석조건물은 거대하고 차가운 이미지로 권위적 대학문화를 상징하고 있다.

86 하길종 감독 아들이 본 영화 ‘바보들의 행진’ 배경

하길종 감독의 영화 ‘바보들의 행진’(1975년)이 개봉한 지 40년이 지났다. 서울역 앞의 고가는 철거돼 ‘서울로 7017’ 공원으로 재탄생했고, 1호선뿐이던 지하철은 9호선까지 늘어났다. 서울은 과거의 모습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변했고,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본 청춘은 이제 예순이 넘었다. 이들의 손자가 대학에 들어가는 지금, 이 영화가 던진 세상에 대한 고민은 서울이 이처럼 바뀐 만큼 모두 해결됐을까? 필자의 선친이기도 한 하 감독이 세상에 던지고 간 것들은 오늘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남산과 명동 일대 = 영화는 미팅을 하러 가는 대학생들로 시작한다. 철학과 대학생 병태와 영철은 목욕재계를 하고 양복까지 차려입고 미팅 장소로 간다. 시내를 활기차게 걸어가다 장발 단속을 하는 경찰들을 만나자 도망가기 시작해 한국은행 앞 사거리를 지나 을지로 입구로 달려간다. 경찰을 따돌리고 겨우 한숨을 돌리고 육교를 건너다 걸려 난간에 매달려보지만 결국 파출소로 잡혀간다. 이때 송창식의 ‘왜 불러’가 나온다. 파출소에서 자기들의 장발이 “사회에 혐오를 조장하기 때문”이라 자조적으로 말한다. 미니스커트 단속한다고 길가에서 무릎 위로 치맛단까지 자로 재는 세상. 마치 공상과학(SF) 영화의 디스토피아 세상을 묘사한 것 같은 사회가 1970년대 한국의 서울, 한복판이었다.

이 장면은 ‘바보들의 행진’의 맨 앞 시퀀스의 하나로, ‘왜 불러’란 노래와 딱 맞아떨어지는 장면으로 매우 유명하다. 이 장면에 얽힌 뒷얘기가 있다. 하 감독도 평소 장발이었다. 그는 명동을 걷다 본인이 장발 단속에 걸려 조선호텔 근처의 소공동 파출소로 잡혀갔다. 다른 사람들이 잡혀 온 틈을 타서 몰래 도망을 갈 수 있었는데, 이때의 경험이 병태와 영철의 장발 에피소드로 그대로 만들어졌다. 한편 이 장면을 한국은행 사거리에서 촬영하고 있을 때 경찰이 스태프 중 장발인 사람을 찾아내 잡아가려 해서 경찰을 가운데에 있던 분수로 밀어붙여 버렸다는 일화도 있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인 영자(왼쪽)와 병태.
영화 속 두 주인공인 영자(왼쪽)와 병태.

이처럼 영화의 많은 장면은 남산과 명동, 회현동 일대에서 촬영됐다. 둘이 단속에 쫓겨 매달렸던 육교는 남대문 시장 교차로 근처의 육교였고, 영자가 병태에게 돈을 주고 한턱내라고 하던 곳은 명동의 음악 살롱 오비스캐빈이었다. 영자가 비 오는 밤에 학점을 구걸하러 찾아간 교수의 집 실내 장면은 다른 곳에서 촬영됐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하얏트 호텔 근처에 위치한 하 감독의 처가이자 필자의 외갓집이다. 이 집에서 찍은 다른 장면은 영자와 영숙이 서로 대화하는 장면으로 당시 20대였던 하 감독의 처제 방이었다. 병태와 영철이 사는 곳도 아니고, 대학교가 위치한 곳도 아닌데 왜 이곳에서 유독 많은 장면을 촬영한 것일까. 그 이유는 하 감독에게 가장 익숙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하 감독은 남산 드라마센터에 위치했던 서울예전(현 서울예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고, 살던 곳은 남산의 건너편 지금의 힐튼호텔로 가는 순환도로로 내려가다 우측에 있던 경서아파트다(지금도 이 아파트는 남아 있다). 그는 같은 아파트 안에서 세 번 이사하면서 197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았다. 명동은 1960년대부터 은성다방을 위시해 한국의 다양한 문화계 인사들의 사랑방이었고, 충무로는 예로부터 한국 영화의 아지트였다. 가족과 생활하고, 학생을 가르치고 영화를 만드는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던 가장 익숙한 장소가 바로 이 좁은 지역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원작자인 소설가 최인호 작가와 충무로의 여관에서 합숙하면서 명동과 충무로에서 당시 젊은이들의 생활을 취재하며 시나리오를 썼다.

매일 다니며 호흡하던 공간이었기에 하 감독은 ‘바보들의 행진’을 생동감 있고, 리얼하게 촬영하고 연출할 수 있었다. 더욱이 본인의 경험까지 더해지면서 이 영화는 공간과 경험 두 가지 측면 모두에서 리얼리즘에 충실한 영화가 될 수 있었다. 이제 이 영화는 40년 전의 서울의 한복판을 다시 발견할 소중한 인류학적 자료들을 제공하기도 한다.

장발 단속 장면의 배경이 된 한국은행 사거리.
장발 단속 장면의 배경이 된 한국은행 사거리.

◇경희대 교정 = 병태와 영철이 다니는 학교 장면은 경희대 교정에서 대부분 촬영됐다. 이 영화는 당시에도 대학생의 실생활을 생생하게 담고 있어서 큰 화제가 되었다. 경희대의 석조건물들은 거대하고 차가운 이미지로 권위적인 대학 문화를 상징하고 있다.

영화 중반, 교수는 “이렇게 운동 연습을 해도 되나”라고 혀를 끌끌 차며 나가고, 학생들이 모두 나가지만 병태는 혼자 남는다. 그리고 야구경기 등 운동경기 장면이 나오고, 병태는 운동경기 연습을 거부하고 혼자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 장면은 검열에 의해 대학생 데모 장면이 삭제되고, 대신 운동 장면이 삽입된 것이고, 실은 병태가 데모하러 나가는 것에 대해 갈등하는 장면이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여러 장면이 삭제돼 현재 남아 있는 영화의 분량은 102분으로 15분이나 잘려나갔다.

후반부에 병태가 교수에게 담뱃불을 빌리려 하고, 영철이 교정에서 담배를 피운다고 뺨을 맞는 장면은 학생들의 탈권위 욕구와 교수의 보수적 권위의 충돌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장면이다. 두 사람이 5·16광장(현 여의도 공원)을 가로지르는 장면은 유신정권의 권위에 대한 상징적 도전이기도 했다. 영화가 청춘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포인트는 이와 같이 대학생의 생생한 현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젊은이의 탈권위적 주장과 사회변혁에 대한 일방적 주장을 하기보다 망설이고, 갈등하는, 또 어른 앞에서 약할 수밖에 없는 개인을 보여주는 면도 공감을 얻었다. 병태가 당시 가장 일반적인 대학생을 반영하고 있다면 영철은 특이한 인물이다.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불합격, 대학도 돈을 내고 들어왔고, 군대도 불합격이다. 영화 중 차에 타고 있는 아버지와 우연히 만나 “지금 뭐 하냐?”고 묻자 “서 있습니다”라고 엉뚱한 대답을 하는 존재다. 공부할 것 아니면 집으로 돌아오라는 아버지의 훈계에 돈이나 달라는 영철의 모습은 이리 갈 수도, 저리 갈 수도 없는 당시 청춘의 수동공격적 태도로 나름 최선의 반항이었다.

“철학과 나와서 뭐할 건데요?” 미팅에서 만난 여자친구가 냉정하게 묻는다. 2017년의 ‘문송’(문과라서 죄송합니다)은 40년째 현재진행형이다. 영철은 우산을 단 ‘빨푸리’를 만들어 담배가 비에 젖지 않게 하면 대박을 칠 것이라는 꿈을 말하며, 동해에 사는 예쁜 고래 한 마리 잡으러 갈 것이라 호언한다. 당시의 청춘은 현실적이지 않아도 꿈을 얘기할 수 있었다.

지금의 청춘은 어떤가. 최근 대학의 외형은 엄청나게 발전했다. 기업의 후원과 발전기금으로 최첨단 빌딩들을 지었다. 우후죽순처럼 빌딩들이 늘어서 있다. 학생의 수업공간은 럭셔리해졌고, 교수의 연구공간도 많아졌다. 학교는 멋져졌지만 학생들의 삶은 40년 전 병태와 영철, 영자와 영숙보다 행복할까? 이런 질문에 “네 행복해요”라고 대답할 수 있는 학생은 별로 없을 것이다. 병태와 영철은 그래도 낭만이 있었다. 미팅도 하고, 좋아하는 여학생을 자전거를 자가용이라 우기고 학교까지 태우고 갔다. 막걸리 대회에 나가서 미친 듯이 술을 마셔도 됐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서 메르소의 심리상태를 논하라는 시험문제에 ‘그것은 작품을 쓴 카뮈만이 알 뿐이지 우리가 분석한다는 것은 명작에 대한 모독’이라는 용감무쌍한 답안지를 쓰고도 교수에게 애교를 부려서 만회하겠다는 무모한 용기가 있었다. 또 그걸 무례하다고 화를 내기보다 타협책을 찾아내는 교수와 학생의 관계라는 것이 존재했다.

지금의 캠퍼스는 어떠한가. 대학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이미 힘을 소진해 버린 이들에게 낭만은 쥐뿔, 딴생각은 사치다. 스펙을 쌓고, 학점을 관리하는 것은 1학년 1학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치솟은 등록금과 주거비용은 아르바이트로 충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이들에게 지금 ‘바보들의 행진’을 보라고 하면 1970년대의 폭압적이고 권위적 사회보다 먼저 “와, 저 시절에는 저렇게 놀아도 됐나 봐요. 역시 영화네!”라고 반응하지 않을까.

이들이 내가 곧 세상의 주역이 될 것이라는 자각을 하며 꿈을 키우거나, 세상의 부조리와 불합리에 당당히 자기주장을 할 틈을 사회는 주지 않는다. 이미 사회 시스템은 공고해져서 그들이 한자리 끼어들 틈을 쉽사리 주지 않는다. 세상에 나갈 준비가 안 되었다며 졸업유예가 일상이 되어 버렸다. 서울대 인문대 졸업생 중 10학기 이상을 등록한 학생 비율이 2012년 49.8%이나 된다. 어렵게 취업에 성공해도 소모품일 뿐이라는 미생적 불안이 일상화됐다. 공부요령은 좋고, 공부에 바친 시간은 많았지만 똑똑한 사람을 만나긴 어렵다. 그런 면에서 지금도 여전히 바보들은 행진을 하고 있는 셈이다. 과거 병태와 영철이 자조적으로 자신을 바보라고 칭한 데 반해, 지금의 청춘들은 아는 것은 훨씬 많지만 실제 삶은 바보같이 정해진 대로 끌려가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1970년대 청춘의 고민 해법은 이랬다. 영철은 동해안 절벽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 자살을 한다. 병태는 휴교령이 내려진 학교를 떠나 군대에 들어간다. 영화는 발랄하고 스피디하지만 영화의 엔딩은 묵직하고 비관적이었다. 병태의 선택은 어찌 됐든 사회의 시스템 안에 순응하는 타협적인 면이 있었다면 영철은 자기파괴를 통한 강렬한 표현을 선택했다. 에밀 뒤르켐은 1897년 ‘자살론’에서 자살을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영철의 자살은 사회의 급격한 변화로부터 경험한 아노미와 개인을 억압하는 사회에 대한 무력감에 빠진 숙명론적 자살이 겹친 것이었다.

‘바보들의 행진’이 나온 후 긴 시간이 흘렀지만 이 영화가 던진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2017년의 바보들이 더 답답해진 세상을 풀어갈 해법은 무엇이 돼야 할까. 지금도 젊은이들은 슬픔을 안은 채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고 있다. 40년 사이 시스템은 정교해지고 강력해져서 20대 청춘이 온전히 여유를 갖고 세상을 둘러보며 숨 쉬며 꿈을 꾸고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행진해 볼 기회를 주지 않고 있다. 남산과 명동, 남대문은 외국인 관광객으로 붐비고 있지만 청춘의 밝은 목소리는 찾기 어려운 2017년이다.

하지현 건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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