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물결 효과

동반자가 자책하거나 짜증스러운 행동을 보일 때가 있다. “이런 등신!” “바보 같은 놈!” “공을 이렇게 치다니!” 등등…. 옆에 있는 사람을 향해 내뱉는 말이 아니다. 자신의 잘못된 샷을 향해 퍼붓는 말이다. 겉으로 보면 분명 자책하는 것이다. 그러나 목적이 있는 ‘수단’일 수도 있다. 경쟁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노련하고 교묘한 노림수일 수 있다. 초보 골퍼들은 이러한 베테랑에게 속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의 실수는 나의 행복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상대방이 자책하는 혼잣말이나 신경질적인 반응은 결코 나의 행복일 수 없다. 그에 영향을 받아 실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지역 클럽챔피언전에서 벌어진 일이다. 경쟁자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무너진 아마추어 고수가 있었다. 3홀을 남기고 3타 뒤진 A는 체념하듯 B에게 “백스윙에서 손목 코킹을 언제쯤 하세요?”라며 “한 수 알려 주세요”라고 부탁했다. B는 뻔한 얘기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이후 머리가 복잡해지면서 볼을 물에 빠트려 더블보기를 범했고, 남은 2홀에서 연속 보기로 타수를 잃어 A에게 우승컵을 뺏겼다.

이런 걸 ‘잔물결 효과’(ripple effect)라고 한다. 호수에 큰 돌을 던지면 한 차례 큰 파동이 일고, 시간이 지나면서 호수 가장자리에까지 작은 파동이 이어진다. 심리학에서는 조직 구성원의 일부를 야단쳤을 때 다른 구성원들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말한다. 잔물결 효과는 벌을 받는 사람이 조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거나, 상사의 명령·지시가 모호할 경우 더 크게 나타난다. 국제금융시장에서 한 국가의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같은 처지에 처한 국가들의 신용등급이 잇달아 하향 조정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수를 연발할 때, 잔물결 효과를 교묘하게 활용하는 프로골퍼들도 있다.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공의 주변을 살피면서 왔다갔다 하거나 ‘프리 루틴 샷’을 연발하며 플레이를 지연시킨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의 크리스티 커(미국)가 대표적이다. 지난 4월 미국 하와이주에서 열렸던 LPGA투어 롯데챔피언십에서 장수연은 3라운드까지 17언더파로 2위에 3타 앞섰다. 그러나 커의 ‘교묘한 행동’으로 희생양이 됐다. 커는 좋은 샷, 또는 미스 샷일 때 소리를 지르거나 캐디와 크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동반자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린다. 장수연은 마지막 날 4라운드 초반 5번 홀까지는 버디 1개를 잡아내 선두를 달렸지만 6번 홀에서 보기, 8번 홀에서 더블보기를 범하면서 무너졌다. 반대로 커는 버디만 6개를 낚으면서 합계 20언더파로 우승했다. 장수연은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했지만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었을 것이다.

2015년 인천에서 열린 LPGA KEB 하나은행 챔피언십 3라운드에서 당시 루키였던 지한솔은 브리트니 랭(미국)의 슬로 플레이에 흔들렸다. 랭의 교묘한 ‘지연 작전’으로 인해 앞 조와의 플레이 격차가 벌어졌고 경기위원은 30초 안에 샷, 퍼트를 해야 한다고 공지했다. 14번 홀에서 지한솔의 퍼팅 시간이 10초 정도 늦어졌고 결국 2벌타를 받았다.

불순한 의도가 분명히 담긴 동반자의 행동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에게 집중한다면 심리전에서도 이길 수 있다. 5월 LPGA투어 아메리카 텍사스 슛 아웃의 노무라 하루가 좋은 예다. 연장전이 시작되자 커는 평소보다 과하리만큼 부산을 떨었다. 캐디와 연신 대화하다가, 샷을 할 듯 자세를 취했다가 다시 푸는 등 노무라를 자극했다. 짜증날 만했지만 노무라는 침착함을 잃지 않았고 자신의 샷에 집중했으며 우승컵을 품었다.

살다 보면 도움을 받을 때도 있고, 반대로 방해를 받을 때도 있다. 누가 어떻게 자극하든 평정심을 유지하고 초심을 잃지 않으며 나에게 집중한다면 바라던 바를 성취할 수 있다.

심리학 박사·연우심리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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