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국정원 ‘제자리 찾기’ <上>‘국내차장’ 명칭 사용 않고
1차장 - 해외·2차장 - 북한
3차장 - 방첩차장 명칭변경

대선 댓글·논두렁 시계 등
정치 개입 의혹 13건 조사
“또 다른 정치보복” 우려도


국가정보원이 문재인 정부 출범을 계기로 국내 정치개입 단절, 적폐청산 등을 추진하는 등 순수정보기관으로서의 ‘제자리 찾기’에 나선다. 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한 ‘권력기관의 권력분립·견제·균형 재조정을 통한 실질적 민주주의의 구현’ 기조에 맞춰 국내정보담당관(IO) 제도를 폐지하고 안보상황실을 개편하는 등 개혁에 착수한 것이다. 국정원은 지난 56년 역사상 이름을 중앙정보부에서 국가안전기획부로, 다시 국정원으로 세 차례 바꾸는 등 다각도로 변화를 시도해왔다. 하지만 거의 모든 정권이 공약과 달리 국정원의 정보와 조직을 정권유지나 국정운영, 공직사회 장악 등에 활용하면서 개혁이나 제자리 찾기 시도는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다.

문재인 정부의 첫 국정원장으로 지난 6월 1일 임기를 시작한 서훈 국정원장은 취임 직후부터 개혁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서 원장은 취임 일성에서 “팔이 잘려나갈 수도 있다. 많은 상처를 입게 될 것”이라며 “그러나 지금은 상처 없이 다시 설 수 없는 상황”이라는 현실 인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가 외부에서 활동 중이던 모든 기관 출입 IO를 본부로 복귀시킨 일은 ‘정치 개입 가능성 원천 차단’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이번 정부 국정원 개혁의 신호탄이다. 각종 선거·정치과정에 국정원이 개입할 수 있다는 지적을 인식, 앞으로는 가능성 자체를 봉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와 관련해 12일 여권 고위관계자는 “국내 정보가 정부 운영에는 도움이 되지만 정치 개입과 민간인 사찰 논란이 불가피한데 (IO 제도 폐지는) 이러한 논란을 차단하는 조치”라며 “(IO 제도 폐지로)개혁의 90%를 한 셈이고, 나머지 10%는 이 방향성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은 정보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하고자 조직부터 새로 짰다. 지난 11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는 1차장을 해외차장으로, 2차장을 북한차장으로, 3차장을 방첩차장으로 부르기로 한 계획이 공개됐다. 앞으로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국내 차장’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국정원은 밝혔다.

국정원이 자체적으로 만든 개혁발전위원회와 그 산하에 둔 두 개의 조직 ‘조직쇄신 TF(기조실장이 팀장)’, ‘적폐청산 TF(현직 검찰이 팀장)’의 활동도 얼마나 성과를 낼 지도 주목된다. 특히 적폐청산 TF는 그동안 논란이 된 국정원의 정치개입 의혹 사건 13건을 조사,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는 데 집중한다는 게 국정원의 구상이다.

이날 국회 정보위를 통해 국정원이 밝힌 조사 대상 13건은 △대선 댓글 사건 △서울 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박원순 서울시장 제압 문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정보를 직접 보고한 의혹이 제기된 추모 전 국장 사건 △문화계 블랙리스트 △헌법재판소 사찰 △좌익효수 필명 사건 △채동욱 검찰총장 뒷조사 △극우단체지원 △세월호 참사 의혹 △노무현 논두렁 시계 사건 △이탈리아 해킹프로그램 이용 민간인 사찰 및 선거개입 의혹 등이다.

그러나 국정원의 이 같은 계획과 관련, 과거 정부의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것은 자칫 또 다른 정치보복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12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초선의원 연석회의에 참석해 “국정원 TF하면서 과거에 있었던 모든 사건을 재조사하겠다는 걸 보면서 어처구니없다는 걸 느꼈다”며 “국정원 TF를 통해 거꾸로 미화하고 조작하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는데 이 부분은 권력의 일탈”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국정원도 이 같은 우려를 인식하고 있다. 서 원장은 국회 정보위에 출석한 자리에서 “꼭 봐야 하는 사안이 있다면 정권을 가리지 않고 할 용의가 있다”면서도 “유념해서 조사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김유은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부교수는 “매번 국정원을 개혁한다고 했지만 결국 정부 좋은 방향으로 인사를 하고, 의지가 부족했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는 의혹이 있는 사건의 경우 모두 조사하되, 특정인을 처벌하는 등 정치 보복적 성격을 띠지 않도록 하는 데 초점을 두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진 기자 klu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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