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조직 / 버트런드 러셀 지음, 최파일 옮김 / 사회평론

헤겔은 “우리가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헤겔의 말처럼 우리는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울 수 없는 것일까.

지금으로부터 약 80년 전, 1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세계가 폭풍 전야의 위기감에 휩싸인 1930년대 버트런드 러셀은 이 책을 집필했다. 러셀이 이 책을 쓴 이유는 1차 세계대전을 불러온 숨겨진 원인을 밝혀냄으로써 다가오는 전쟁을 막고,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러셀은 19세기를 자유와 이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로 출발했으나 세계대전이라는 초유의 실패로 귀결되고 만 아이러니의 시대로 설명한다. 이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러셀은 ‘자유’와 ‘조직’을 19세기의 키워드로 선택한다. 저자는 자유와 조직이 극한까지 치달은 결과, 1차 세계대전 직전에 ‘국가 간 관계에서의 무제한적 자유’와 ‘국가 내 고도의 조직화’가 지배적 신조가 됐다며 그 결과로 ‘국제적 무정부 상태’가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러셀은 1차 세계대전 직전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음주 운전자가 사고를 바라지 않듯이 어느 정부도 전쟁을 바라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평화보다 여러 가지의 국가적 이익을 더 크게 바랐다. 누구 탓이냐고 묻는 것은 교통 법규가 없는 시골의 교통사고에서 누구 잘못인지를 묻는 꼴이다. 국제 정부의 부재로 각 나라는 자신들의 명분의 궁극적 심판자였고, 그 때문에 지금도 세계대전의 발생은 이따금 거의 확실한 일이나 다름없다.” 러셀의 불길한 예언은 결국 현실로 이뤄졌고, 헤겔의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세계는 탐욕스러운 국가들의 브레이크 없는 충돌로 ‘2차 세계대전’이라는 더 큰 희생을 치렀다. 전후 세계는 또 다른 세계대전을 방지하기 위해 유엔을 창설하는 등 노력하고 있지만, 다시금 스트롱맨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한반도가 있다. 중국의 대국굴기, 일본의 평화헌법 무력화, 북한의 핵무장으로 기존의 북한-중국-러시아, 한국-일본-미국으로 이어지던 대립은 이익에 따라 심화되는 동시에 재편되고 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은 일본의 재무장을 지지하고, 위협을 느낀 중국은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격렬히 반발한다. 북한은 끊임없이 미사일 도발이라는 위태로운 줄타기를 통해 미국으로부터 체제를 보장받고자 한다.

위태롭던 유럽의 정세는 1914년 폭발한다. 그렇다면 100여 년이 지난 2017년의 동아시아에는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까?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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