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숍으로 들어선 이성갑은 안쪽에 앉아 있는 김유미를 보았다. 오후 2시 10분. 10분 늦었다. 다가간 이성갑이 앞자리에 앉았을 때 김유미가 물었다.

“어떻게 되었어?”

“나중에 연락하겠다는데…….”

외면한 이성갑이 말하자 김유미는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럴 줄 알고 내가 딴 데 알아보았는데, 컴퓨터회사 AS 하도급을 받아서 영업하는 회사야…….”

이성갑은 외면한 채 대답하지 않았고 김유미가 말을 이었다.

“오빠가 자격증은 없지만 컴퓨터는 도사잖아? 그 회사 부장이 내 선배 남편이야, 윤희 언니 알지?”

“모르겠는데.”

“왜, 호텔 홍보실에서 근무한다는 선배. 지난번에 사진 보여줬잖아?”

“기억이 안 나.”

“아유, 그러니까 번번이……”

와락 말을 뱉었던 김유미가 입을 다물더니 숨을 가다듬었다. 이성갑. 27세. 병장 제대. 일산대 경영과졸. 그것이 2년 전이다. 그동안 중소기업인 명신전자에 입사해서 4개월 근무했지만 갑자기 회사가 망하는 바람에 실업자가 되었다. 오늘 중소기업 한 곳의 3차 면접을 보고 온 길인데 그 자리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김유미한테는 거짓말을 한 것이다. 실업자가 된 지 1년 반 동안 30여 곳에 지원서를 냈고 10여 곳에서 1차 합격 통지를 받았으며 4곳에서는 3차 면접까지 보았다. 오늘 3차에서 4번째 떨어진 셈이다. 그때 머리를 든 이성갑이 김유미에게 말했다.

“나, 여행 좀 다녀올게.”

“여행?”

이게 무슨 귀신이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표정이 된 김유미가 이성갑을 보았다. 김유미. 25세. 구리대 의상디자인과 졸업. 현재 아성물산 의류부 2년 차 사원. 이성갑과 사귄 지는 대학 졸업반 때였으니 3년 되었다.

“이 상황에 무슨 여행? 도대체 어디로 가려는 건데?”

“한랜드.”

“거기 룸시티 구경 가려고?”

“…….”

“돈이나 있어?”

이성갑이 다시 외면했다. 소극적 성격. 남과 다투는 것을 싫어하고 일이 닥치면 피하고 본다. 말수가 적고 차분한 성품 같지만 실제로는 우유부단, 자신감 부족 때문이다. 이제 김유미는 자신의 눈에 콩깍지가 씌워 있었다는 것을 통감하고 있다. 아주 평범한 갑남(甲男)을 비범한 인간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놈의 정(情)이라는 게 뭔지, 3년 동안 수십 번 몸을 섞었다는 것쯤은 무시할 수 있다. 그전에 만난 놈들하고도 그만큼은 엉켰으니까. 그러나 이성갑하고는 가장 길다. 그 인연이라는 것이, 마치 오래 입어서 때 묻은 옷 같다. 버리기엔 너무 익숙해서 아깝고 두자니 냄새가 점점 심해진다. 이성갑의 옆얼굴을 보면서 김유미의 머릿속을 스쳐 간 생각이다.

“언제 돌아오는데?”

다시 김유미가 물었을 때 이성갑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대답했다.

“모르겠어.”

“몰라?”

마침내 김유미의 인내심이 깨졌다.

“좋아, 그럼 나하고 그만 만나.”

김유미가 똑바로 이성갑을 보았다.

“나도 지쳤어, 오빠 걱정하는 것에.”

“…….”

“날 좀 놓아줘.”

그때 이성갑이 머리를 끄덕였다.

“알았어, 너 좋을 대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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