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회 ‘케이닉스’ 프로젝트
유전자 정보 활용 최첨단 기술로 경주마 능력 예측
1억 원대 경주마를 수천억 원의 씨수말로 키운다. 한국마사회가 유전자 정보를 활용한 경주마 능력 예측 기술 ‘케이닉스’를 개발, 경주마 생산국가로의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사업이 성공을 거두면 연간 200억 원 규모의 경주마, 번식마 수입을 대체할 수 있고 나아가 경주마 수출국으로 변신할 수 있다. 마사회가 케이닉스를 통해 발굴한 경주마들이 유명 경주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경우 몸값 2000억 원이 넘는 씨수말로 보유하는 것도 현실이 될 수 있다. 케이닉스는 유전자 정보를 활용한 세계 최초의 선발교배 프로그램이다. 2008년 서울대와 마사회가 공동으로 연구를 시작해 2013년부터 마사회 말산업연구소가 단독으로 기술을 개발했다. 능력이 검증된 말의 DNA 정보를 활용해, 어린 경주마의 능력을 예측한다. 현재는 케이닉스Ⅲ까지 개발됐고 국내·외 유명 학술지에 관련 논문이 7건 게재됐으며 특허 4건을 등록했다.
케이닉스의 현재 정확도는 0.75 정도다. 실용화돼있는 젖소는 정확도가 0.85를 넘는다. 정확도가 1이면 100% 맞춘다는 의미다. 케이닉스가 더 많은 말을 검사해 기술을 발전시킨다면 머지않아 젖소의 정확도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개별 경주 결과는 말의 훈련 상태, 조교사, 기수, 경주 전개 양상 등 다양한 요소의 영향을 받기에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경주마가 천성적으로 지닌 능력 자체는 상당히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케이닉스를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해 브리더스컵에 출전한 ‘제이 에스 초이스’다. 경주마의 몸값은 부마(父馬), 모마(母馬), 자마(子馬)의 능력에 기초해 형성된다. 제이 에스 초이스는 부마의 능력은 검증이 됐지만 모마는 그렇지 않아 2015년 경매에 나왔을 때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제이 에스 초이스의 모마는 경주마로서 자신의 능력은 뛰어났지만, 아직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친 자마가 없었다. 이진우 말산업기획팀 종축개량파트장은 “케이닉스로 제이 에스 초이스를 검증해보니 유전적으로 부마와 모마의 조합이 좋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마사회는 7만5000달러(약 8500만 원)라는 상당히 싼 가격에 제이 에스 초이스를 구매했다.
마사회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은 지난해 증명됐다. 제이 에스 초이스는 지난해 우승경험이 없는 2세마 경주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3차례 경주 만에 브리더스컵에 출전했다. 브리더스컵은 관객 수 기준으로 북미에서 개최되는 경주 중 4∼5위에 해당하는 대회다. 한 해 미국에서 태어난 2세마 중 0.2%만이 브리더스컵에 나간다. 제이 에스 초이스가 능력을 입증하면서 같은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동생의 몸값은 크게 올랐다. 지난해 거래된 제이 에스 초이스의 동생은 35만 달러였다. 제이 에스 초이스가 모마의 씨말 능력을 검증한 덕분이다.
마사회는 말을 구입하기 전 말의 털부터 먼저 확보했다. 말에서 직접 털을 뽑아야 정확한 분석이 가능하다. 몰래 털을 뽑으면 문제가 될 수 있기에 매번 마주들을 설득해야 했다. 말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바닥에 떨어진 털 같은 것은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다른 말의 털과 섞일 가능성도 있고 모공이 훼손돼 정확한 분석이 어렵다.
마사회는 토트 플레처라는 유명 조교사와 계약하고 경주마 훈련을 맡겼다. 플레처는 축구로 치면 발롱도르에 해당하는 이클립스 최우수 조교사 상을 모두 7회나 받았다. 최고의 조교사다. 제이 에스 초이스 외에 역시 케이닉스로 구입한 ‘미스터 크로우’가 지난 6월 신마경주에 출전해 2위에 올랐다.
케이닉스로 선발돼 미국에서 관리되고 있는 말은 모두 13마리다. 제이 에스 초이스, 미스터 크로우 등 미국에서 태어난 말이 10마리이고 3마리는 한국산이다.
한국에서 건너간 말들은 메니피 등 국내 유명 씨수말의 자마이며 케이닉스 검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미국에서 훈련받아 현지 경주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미국에서 씨수말로 데뷔하게 된다. 국산마를 미국으로 수출하게 되는 셈이다.
마사회의 케이닉스 사업은 총 4단계로 진행되는 장기 프로젝트다. 선발기술을 이용해 미국에서 경주마를 구매한 후 현지에 위탁하는 게 1단계, 그리고 브리더스컵이나 켄터키 더비 등 미국 유수 경주에 출전하는 2단계가 진행되고 있다. 주요 경마 대회 우승은 케이닉스 사업의 최종 목표가 아니다. 실력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경주마를 미국에서 씨수말로 데뷔시키는 3단계, 국내에 데려와 씨수말로 활용하는 4단계까지 이어져야 한다.
4단계까지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대성공이다. 해외 정상급 씨수말을 구매하려면 많게는 수천억 원을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국내에선 이를 감당할만한 기관이나 사업자를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
한국은 통상 수십억 원대의 씨수말을 도입해 왔다. 유전능력이 뛰어난 경주마를 조기에 발굴해 미국에서 검증을 거치며 몸값을 불린 후 국내에 반입할 수만 있다면 아주 적은 돈으로도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제이 에스 초이스가 단계별 목표를 달성한다면 한국마사회는 7만5000달러로 수십억, 수백억 원 몸값의 씨수말을 데려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케이닉스 사업을 통해 몇 년 후 한국이 메니피 이상의 뛰어난 씨수말을 다수 보유할 수 있다. 이진우 팀장은 “미국에서 씨수말로서의 자질을 검증받으면 해외에서도 그 능력을 인정해주기에 장기적으로 농가소득, 경주마수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성진 기자 threeme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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