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과 관련해 명확한 언급이 없는 문무대왕릉비와 ‘삼한’을 언급한 이차돈순교비, 무열왕의 ‘삼한 통일’을 기록한 원랑선사탑비.(위부터 시계 방향)  자료사진
‘통일’과 관련해 명확한 언급이 없는 문무대왕릉비와 ‘삼한’을 언급한 이차돈순교비, 무열왕의 ‘삼한 통일’을 기록한 원랑선사탑비.(위부터 시계 방향) 자료사진

‘신라인…’펴낸 신형준씨 주장

“신라인들조차 자신들이 삼국을 통일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한국사 교과서와 대부분의 역사책에서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고 문무왕이 과업을 완성했다고 나온다. 여기서 삼국은 신라·고구려·백제를 말한다. 하지만 당대 신라인들은 고구려가 포함되지 않는 삼한(三韓)을 통일했다고 인식했으며 ‘삼국 통일’이라 생각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사학 전공자로 일간지 문화재 기자를 지낸 신형준 씨는 최근 펴낸 ‘신라인은 삼국 통일을 말하지 않았다’(학고재)에서 “신라인들은 물론, 고구려나 백제 유민들이 직접 남긴 모든 기록까지 조사해 ‘신라인들의 통일과 국경에 대한 인식’을 분석한 결과”라며 이처럼 주장했다.

신라의 삼국 통일을 ‘백제 통합’이나 ‘불완전한 통일’로 보는 시각이 없진 않았지만, 남아 있는 기록을 전수조사하다시피 해 당대인의 인식 차원에서 살핀 연구는 처음이다. 저자는 신라인이 직접 쓴 금석문, 최치원 등 신라인의 문집, 고구려와 백제 유민의 묘지명,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일부 중국 기록 등을 분석했다.

예컨대 신라 진성왕 4년(890)에 건립된 월광사 원랑선사탑비를 보자.

“태종대왕께서(…) 삼한에서 전쟁을 그치게 하고 통일을 달성하신 때에…”(太宗大王… 戈三韓之年垂衣一統之日被)

원랑선사탑비는 통일을 달성한 왕을 태종대왕 즉 무열왕 김춘추(재위 654∼661)로 기록했다. 역사책에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시점이 676년으로 돼 있다. 신라는 당과 함께 백제를 공격해 660년에 멸망시켰고, 668년에 고구려를 무너뜨렸다. 이후 당의 군대를 몰아낸 676년을 통일을 이룬 해로 보는 것이다. 이미 백제의 멸망만 지켜본 무열왕이 숨진 뒤다. 원랑선사탑비는 문무왕(재위 661∼681)이 아닌 무열왕이 통일을 달성했으며, 삼국이 아니라 삼한을 통일했다고 적고 있다. 신라인이 생각한 통일은 백제 혹은 그보다 약간 더 넓은 영역이었고, 고구려는 통일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삼국 대신 고구려가 포함되지 않은, 한반도 중남부에 있었던 삼한(마한·진한·변한)을 통일한 것으로 인식했다고 볼 수 있다. 통일 군주로 무열왕을 꼽은 기록은 7건, 문무왕은 3건이었다. 신라의 ‘삼한 통일’이라는 표현은 11차례, ‘삼국 통일’이라고 남긴 기록은 3건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학계에선 ‘삼한’을 ‘삼국’으로 간주했는데, 최치원이 885년에 쓴 ‘태사시중에게 올린 글’(上太師侍中狀)에서 “마한은 고구려이고 변한은 백제이며, 진한은 신라”라고 언급한 데 근거하고 있다. 저자는 “최치원의 글 뒷부분에 있는 ‘고구려의 잔당이 북쪽에 있는 태백산 아래에 모여서 국호를 발해라고 했다’는 내용은 고구려 세력이 발해로 이어졌다는 의미로,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고 생각한다면 나올 수 없는 문장이다. 신라인들은 삼한에 고구려나 발해를 포함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저자는 “만약 신라인들이 삼한에 고구려가 포함됐다고 생각했다면 통일의 위업을 해치는 발해의 건국을 막으려 했을 것”이라며 “신라인들은 발해의 건국에 오불관언이었고 어디에도 이를 언급한 기록이 없다”고 했다. 그는 “한국 사학계의 주장처럼 ‘삼국=삼한론’을 펼쳤을 때 고구려나 발해가 중국 지방 정권의 하나였다는 기존의 동북공정 주장이 한반도 전역으로 확대될 위험과 맞닿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구려의 옛 땅을 당나라가 잠깐 차지했지만, 고구려 멸망 한 세대 뒤 고구려의 후예인 발해가 건국하면서 만주와 한반도 북부는 다시 우리의 역사로 들어왔다. ‘삼한=삼국=당나라 영토’라는 중국의 논리를 신라가 받아들인 적도 없지만, 발해 건국과 함께 이 논리는 설 자리를 잃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통일신라시대와 남북국시대(통일신라·발해) 중 어느 쪽이 옳으냐는 학계의 논쟁에 대해 “당연히 남북국시대가 맞는다. 통일신라시대라고 하면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가 제외될뿐더러 신라인의 생각과도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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