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훈 바른정당 대표
바른정당 대표로 선출(6월 26일)된 지 꼭 3주일째를 맞은 지난 17일 오후 국회에서 만난 이혜훈 대표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전날 시간당 최대 90㎜, 하루 290㎜의 기록적 폭우로 쑥대밭이 된 충북 청주시 수해 현장을 방문하고 돌아오자마자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 응한 것이었다. 모든 원내 정당이 앞다퉈 특별재난지역 지정을 촉구하는 등 수해에 많은 관심을 보였지만 당 지도부급 인사 중 가장 먼저 현장으로 달려간 사람은 이 대표였다. ‘당대표 중 1등으로 달려갔다’는 기자의 말에 이 대표는 “우리 바른정당의 모토가 ‘바르게, 빠르게’잖아요”라며 웃어 보였다. 국회 의석상 원내교섭단체 요건(20석)에 턱걸이하고 있는 미니정당인 바른정당의 회생 전략을 응축한 표현이었다. 대표 취임 후 3주일이 아니라 한참은 더 지난 것 같다는 이 대표에게 그간의 소회와 향후 계획을 들어봤다.
― ‘바르게, 빠르게’라는 말이 참 인상적입니다.
“바른정당 의석이 20석이다 보니 과거와 달리 국회 내에서 결정력을 갖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반대한다고 막을 수도 없고 찬성한다고 통과시킬 수도 없어요. 그런데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과 (일본 도쿄도지사)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돌풍을 보면 요즘 유권자들은 그런 것보다는 ‘저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냐’ ‘우리와 생각이 같은 사람들이냐’를 중시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국민이 믿을 수 있도록 바른 소리를 하자는 겁니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는 바른 소리를 해도 한 박자씩 늦었던 것 같아요. 당대표도 없이 4~5개월 오다 보니 마치 선장 없는 배처럼 느렸죠. 그래서 국민 머릿속에 바른정당이 어떤 바른 소리를 했는지 하나도 안 남아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바른 소리를 빨리 해야겠구나 생각한 겁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국민도 알아주실 거라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 보수진영 전체가 궤멸 위기에 처했다는 진단이 나옵니다.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 모두 자신들이 보수를 되살릴 적임자라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홍준표 대표가 이끄는 한국당의 혁신 움직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홍 대표가 말하는 혁신은 무망(無望)합니다. 아무것도 얻지 못할 거라고 봅니다.”
― 어째서 그렇습니까.
“(한국당 사람들은) 혁신 자체를 할 수 없고 그럴 의지도 없는 분들입니다. 혁신의 방향을 ‘태극기 집회’로 보는데 그게 어떻게 혁신입니까, 반동이지. 혁신위원장이라고 모셔 온 분(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을 보세요. 보수의 기본은 법을 지키고 공동체를 보호하는 겁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부정하고 승복하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감히 보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들과는 다릅니다.”
― 한국당은 ‘낡은 보수’고 바른정당은 ‘개혁 보수’라는 얘기인데요, 그 차이는 뭔가요.
“정체성이 다르고 정치하는 방식도 다 다릅니다.”
차분했던 이 대표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표정도 굳어져 갔다.
“보통 외국에선 경제에 대한 관점으로 보수와 진보를 나누지만 우리는 분단국가의 현실 때문에 안보관도 중요합니다. 안보와 관련해서는 저쪽(한국당)이나 우리나 똑같이 ‘안보 보수’를 말하지만 내용은 전혀 다릅니다. 저쪽 사람들은 ‘빨갱이 딱지’를 붙이고 ‘종북몰이’ 하면서 보수라고 (자처)하는데 그건 그냥 그들만의 정치놀음일 뿐입니다.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면 김정은이 집권하는 것과 같다’는 게 홍 대표가 대선후보 시절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쏟아냈던 얘기예요. 거기에 (한국당) 당원들은 환호했죠. 결국 저쪽은 냉전 반공주의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지 21세기 대한민국에 맞는 분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북한 핵 위협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종북몰이는 안 합니다.”
똑같이 보수를 표방하지만 바른정당이 추구하는 보수의 노선은 한국당과 분명히 다르다는 얘기였다. 이런 시각은 경제관으로도 이어졌다.
“모두가 시장경제를 말하지만 시장은 만능이 아니잖아요. 결함이 있고 부패도 있죠. 힘없는 약자들이 시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횡포를 일삼는 사람들에게 억울하고 부당한 일을 당한다면 시장 질서를 바로잡고 약자를 보호해 주는 게 보수의 역할입니다. 그걸 안 하면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가 심화하고 이렇게 되면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대한민국 공동체가 안에서부터 무너집니다. 마치 오두막을 허무는 두더지처럼 양극화는 보수의 적인 거죠. 그러니 경제적으로 힘 있는 권력을 대변하면서 양극화를 지속적으로 양산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보수가 아니라 보수의 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홍 대표로 대변되는 한국당 주류 세력들은 이런 점에서 보수의 적이라고 봅니다.”
― 대선 때에도 유승민 후보와 바른정당이 경제민주화를 내걸었죠.
“우리는 불공정 거래에 대해 두 가지 트랙을 생각합니다. 하나는 ‘경제 법치’입니다. 선진국에 있는 웬만한 법은 우리도 거의 다 갖고 있습니다. 문제는 있는 법도 안 지키는 거죠. 가령 저희가 (새누리당 시절)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을 만들어 재벌의 정치적 사면을 금지하자고 운동하기 전까지 재벌 총수가 실형을 산 적이 없었어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돼 징역형을 받아도 다 집행유예로 풀려났죠. 이후 일부 재벌 총수가 처벌받는 일이 생겼는데 용두사미가 됐고 정치적 사면을 뒷거래하다 보니 (박 전 대통령) 탄핵까지 오는 사태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제도 개선입니다. 가령 옥시(가습기 살균제) 파동의 경우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었는데 집단소송이라는 제도만 제대로 돼 있어도 이런 일은 크게 줄어듭니다. 저도 집단소송법을 수도 없이 냈지만 지금 한국당 내에 그걸 기를 쓰고 막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업들 다 문 닫는다는 얘긴데 그럼 집단소송제가 그렇게도 잘돼 있는 미국의 기업들이 잘나가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겁니까. 우리는 재벌의 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 일감 몰아주기 규제 등도 다 주장하고 있는데 저들은 왜 그걸 하지 말라고 야단인지 이해를 못 하겠어요.”
바른정당을 비롯해 지난 대선에서 참패한 야당들이 살아남기 위해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은 이제 11개월도 채 남지 않은 지방선거다. 이 대표의 시선도 이미 선거일인 2018년 6월 13일을 향하고 있을 터. 다소 이른 감이 있지만 그에게 지방선거 구상을 물었다.
“‘바른 보수’,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중도’죠. 중도라는 게 뭔지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싶어요. 과거 우리가 소위 낡은 보수 정당에 있을 때 주력부대는 대구·경북(TK)의 5060세대였죠. 그분들이 당원으로 주로 포진했었죠. 당시 기억을 돌이켜 보면 선거 때마다 젊은 사람들이 투표장에 몰려나오면 패닉에 빠졌어요. 그 정도로 젊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해 고전했는데 이번에 바른정당에서 당대표 경선을 치르면서 깜짝 놀랐어요. 당원들 분포를 보니 수도권 2030세대가 주력군인 거예요. 또 지금 우리 당에 오겠다는 사람 중에도 그런 분이 많아요. 그래서 ‘보수 대수혈’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이런 분들을 대거 영입해 전진 배치하려 합니다. 백 마디 말보다 우리가 어떤 세력인지 국민에게 확실하게 인식시킬 수 있을 거예요. 또 ‘바르게, 빠르게’를 얘기했었는데 이렇게 바른 사람들을 모아서 가급적 일찍 공천하려고 합니다. 과거 구태 정치 시절에는 밀실에서 공천 장난을 치다 보니 공천 불복이 나타날 게 뻔하잖아요. 그래서 불복할 여유도 주지 않기 위해 후보등록 직전에 공천 결과를 발표했어요. 이런 구태에서 벗어나 아마 바른정당이 가장 먼저 공천을 하게 될 겁니다. 그래서 우리 후보가 어떤 사람인지 알릴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려 합니다.”
― 박종진 전 앵커를 1호로 영입한 뒤 다른 당 현역의원 영입 가능성을 내비쳤죠.
“방금 말한 ‘보수 대수혈’은 전혀 정치에 몸담지 않았던 정치 꿈나무들을 영입하겠다는 거고 이와 별도 트랙으로 이미 정치권에 들어온 현역을 영입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른 정당에 있는 현역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 의원들 다 접촉하고 있습니다. 다만 인사라는 게 99%가 됐다고 해도 말을 하면 안 되잖아요. 100% 되면 발표할 겁니다.”
― 바른정당에서 탈당해 한국당으로 갔던 의원 중 다시 오겠다는 사람이 있는 건가요.
“있습니다.”
― 많이 있나요.
“몇몇 돼요. 저하고 얘기하는 분도 있고 우리 당에 다른 분과 얘기하고 있는 분도 있고. 합하면 숫자가 꽤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꼭 한국당이 아니라 다른 당 분들과도 얘기하고 있습니다.”
― 바른정당에는 지자체장도 일부 있는데요. 외연 확장을 위해 기득권을 포기할 필요가 있다고 보십니까.
“있는 씨암탉 죽여서 뭘 어쩌겠다는 거죠. 유망주들은 더 키워 줘야죠. 바른정당은 지금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얼마든지 비어 있는 곳이 많아요. 누구든 가서 깃발을 꽂을 수 있었던 미국 서부 개척시대의 황금광 같은 정당입니다. 누구든 오면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 지방선거에서 달성하고 싶은 목표는 어느 정도인가요.
“목표는 있지만 그걸 지금 얘기하는 건 적절치 않죠. 다만 우리는 선택과 집중을 하려고 합니다. 규모가 작은 정당이 다 이기겠다고 하는 것만큼 미련한 게 없죠. 상징적인 몇 군데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 유승민 전 대선 후보와 같은 거물급 인사를 차출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요.
“그게 명분이 있는지, 승산이 있는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거물 차출론이라는 것은 정치판 주변의 참여관찰자들이 공상 속에서 만들어내는 수사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 자유한국당과의 통합은 절대로 불가능한가요.
“거긴 침몰하는 난파선입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저만큼 가고 있는데, 냉전시대 반공 이데올로기에 갇혀 이와 상관없이 유리돼 사는 분들이에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서 그분들은 소멸할 수밖에 없는 운명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난파선으로 우리가 왜 들어갑니까. 그분들이 나와야죠. 바른정당이라는 구조선이 준비돼 있으니 빨리 나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낡은 사고방식을 그대로 갖고 있는 분들은 여기 와도 소용이 없겠죠.”
― 당 대 당 통합은 생각 안 하는 것 같네요.
“정말 천지개벽해서 그분들이 바람직하고 합리적인 세력, 중도 개혁적인 세력이 되면 모르겠는데 그건 가능성 제로(0) 아닌가요.”
― 보수층 입장에서는 보수 정당이 나뉘어 있는 것보다는 재통합을 바라지 않을까요.
“그런 것에 연연했다면 지난 대선 때, 의원 13명이 탈당했을 때 합쳤겠죠. 그땐 정말 당이 빚더미에 앉아 파산할 위기였어요. 그런데도 ‘쪽박 차도 좋다, 가치 있는 정치 하자’고 다들 정치생명 걸고 남은 사람들입니다. 뭐가 무서워서 거길 다시 돌아가겠습니까.”
화제를 바꿔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 ‘무서울 정도로 잘하고 있다’고 했던 이 대표의 평가가 여전한지 물었다. 그랬더니 의외의 답이 나왔다.
“그건 와전된 겁니다. 방송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이 소통 잘하냐’고 묻기에 ‘잘한다’고 했죠. 그랬더니 ‘잘하니 좋냐’고 다시 묻기에 ‘좋기는. 무섭다’ 이렇게 답했던 거예요. 뉘앙스가 전혀 다르게 알려졌어요. 당시는 문 대통령 취임 6일밖에 안 됐을 때였는데, 그때 정책이고 뭐고 평가할 게 뭐가 있었나요. 커피잔 들고 참모들과 산책하고 셀카 찍고 이런 소통 의지가 좋아 보인다고 말한 거였어요.”
― 이제 70일쯤 지났는데 지금은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소통하려는 의지와 자세는 인정하는데 국정운영을 하는 데 그건 필요충분조건이 아니잖아요. 일머리를 아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 그게 걱정됩니다. 과거 노무현 정부 때도 굉장히 의지는 강했죠. 그런데 일머리 면에서 너무 미숙해서 본인들의 목표와 완전히 거꾸로 가는 일도 많았어요. 단적으로 부동산 정책만 해도 집값을 잡겠다는 의지는 단군 이래 최고 수준이었는데 일머리를 모르다 보니 꼭 시장에 역행하는 정책만 썼죠. 30여 건의 정책을 내놨는데 노무현 정부 때만큼 집값이 뛰었던 적도 없습니다. 지금 그때의 그림자가 자꾸 보여요. 탈원전 정책도 저렇게 급격하게 쿠데타 하듯 밀어붙여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걱정되죠. 미세먼지 때문에 탈원전을 들고나온 것 같은데 그럼 주범인 석탄 발전을 중단하는 것부터 시작해야죠. 장기적으로 원전을 줄여나가는 데에는 바른정당도 동의하지만 그건 원전을 없애도 전력 수급에 차질이 없도록 신재생 에너지를 개발하면서 단계적으로 가야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도 그래요. 문 대통령이 미국 가서 ‘사드 철회할 생각 전혀 없다’고 선언하지 않았나요. 철회할 것도 아니면서 왜 긁어 부스럼 만들고 사회적 비용만 생기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 아마추어 정부라는 건데 왜 그런 것 같습니까.
“마음이 너무 급한 것 같아요. 민주주의 사회에서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원하는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습니다. 대통령은 반대하는 국민도 다 품고 설득해서 끌고 가야 하기 때문에 기업 CEO보다도 할 수 있는 일이 적을지 몰라요. CEO야 말 안 듣는 사람 해고하면 되지만 대통령이 국민을 해고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대통령이 되면 많은 인내가 필요한데 지금은 너무 빨리 가고 싶고 빨리 성과를 내고 싶어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을 내걸고 공공부문 일자리 늘리기,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경제 전문가 입장에서 소득주도 성장론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건 레토릭(수사)입니다. 성장 얘기가 아니라 이미 만들어낸 부를 어떻게 나눠 갖느냐 하는 분배에 관한 얘기예요. 성장하려면 성장 엔진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안 보입니다. 공무원 일자리 만든다고 경제가 성장하나요. 또 최저임금 올린다고 성장이 되나요. 어찌 보면 허구입니다. 오죽하면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조차도 국회 인사청문회 때 소득주도 성장 얘기는 안 하고 ‘혁신 성장’ 얘기만 했겠어요. 사실 혁신 성장은 지난 대선 때 유승민 후보의 공약이었어요.”
― 소득주도 성장론은 그럼 분배 정책으로 본다면 문제가 없나요. 재정 면에서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그렇죠. 단적으로 지금 반 년짜리 추가경정예산안이 반세기의 재정 부담으로 온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어요. 11조 원 규모의 추경안에서 공무원 일자리 1만2000개를 늘리는 데 7조9000억 원 정도 될 거라는데 이 사람들을 뽑으면 정년 때까지 ‘철밥통’이 되잖아요. 이걸 계산하면 168조 원 정도 된다는 데 대체로 계산이 일치해요. 정부는 (소요) 예산을 너무 과소 추계하고 있어요.”
―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시급 1만 원까지 올리는 일은 시동이 걸렸습니다.
“이번에 최저임금을 올리면서 인건비 부담이 늘어난 영세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4조 원을 쓰겠다는 것 아닌가요. 앞으로도 재정을 통한 지원을 매년 해야 한다는 건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감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속도조절하는 게 필요합니다.”
이 대표는 최저임금 인상은 지금 당장 얼마의 비용이 늘어나느냐에 국한하지 말고 그게 가져올 엄청난 여파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저임금 적용 대상은 (수입 측면에서) 수직계열 구조의 가장 밑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그 수직계열의 위에 있는 사람들, 즉 대리 과장 차장 부장 임금도 따라 올라가는 게 당연한 이치예요. 정부는 지금 최저임금 인상분을 지원하겠다고 하는데 문제는 그것만이 아닌 거예요.”
― 그럼 수직계열 구조의 맨 아래 있는 사람들의 소득을 높여주는 다른 방법은 어떤 게 있죠.
“근로장려세제(EITC)를 통해 저소득층의 소득을 높여준다면 부작용이 덜할 겁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강력한 요구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재협상 또는 개정이 불가피해졌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우선 트럼프 대통령이 팩트를 잘못 알고 있는 게 너무 많아요. 한·미 실무자들이 만나 우선 팩트에 대해 이해를 공유하고 인식의 레벨부터 맞춰야 합니다. 미국이 400억 달러 적자를 내고 있다는데 말도 안 되는 엉터리예요. 그리고 (한·미 FTA 체결 당시 한국 측 수석대표를 지냈던) 김종훈 전 의원이나 김현종(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같은 분을 쓰면 좋겠어요. 지금 우리나라에 한·미 FTA에 관한 한 이분들만큼 세세한 히스토리를 잘 알고 경험이 있는 분이 없어요.”
―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남북군사당국회담과 적십자회담을 제안하면서 본격적인 대화 분위기 조성에 나섰습니다. 새 정부의 대북 접근법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안타깝다고 생각해요. 사실 보수 정부의 강경 일변도 정책이 성공하지 못한 건 인정합니다. 진보 정권도 햇볕정책 펴다가 결국 북한 핵 개발로 돌아왔으니 피차 할 말이 없게 된 거죠. 진보·보수 모두 북한이라는 상대를 핸들링하는 데 실패했으니 이제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지, ‘너희 보수가 실패했으니 우리는 거꾸로 햇볕정책으로 돌아가 대화하겠다’고 할 타이밍은 아니라고 봅니다. 또 지금이야말로 처음으로 국제사회가 똘똘 뭉쳐서 북한을 강하게 압박하고 제재할 수 있는 시기 아닌가요. 과거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엔 미국이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규정했지만 중동에 정신이 팔려 북한 문제에 집중하지 못했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 때에는 민주당 정부다 보니 대북 압박에 소극적이었잖아요. 이제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북한을 압박하고 있는데 우리가 대화를 구걸하는 것 같은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니 참 속상합니다.”
― 지금은 제재 국면이라는 얘기네요.
“문 대통령이 북한이라는 상대에 대해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지금 미국이 강하게 압박을 하면서 중국도 (북한 핵·미사일 위협 대응 방안을) 고민하는 단계까지 왔는데 왜 우리가 이런 분위기를 깨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 시험 발사를 계기로 보수진영에선 현 정부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방침 변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전작권 전환은 우리가 준비됐을 때, 즉 조건(condition)이 갖춰졌을 때 해야 한다고 봅니다. 문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내에 후다닥 처리하려고 하니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 일부 보수 인사는 한국도 핵 무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요.
“국제 사회의 여러 가지 흐름과 정세, 우방과의 관계, 국민의 생각 이런 걸 다 고려해야지 지금 결론 낼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 한·일 위안부 협정을 둘러싼 논란은 어떻게 풀어야 하나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라고 했었는데 그분이 여성에 대한 인식이 있다면 위안부 합의를 저렇게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나도 굉장히 놀랐고 속상합니다. 그 합의는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약속을 파기하면 되느냐’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우리가 먼저 파기한 게 아닙니다. 한·일 위안부 합의가 공식 발표되자마자 일본 자민당 소속 의원들은 물론 합의 당사자랄 수 있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조차 합의를 부정하는 발언을 수도 없이 쏟아냈어요. 위안부 할머니들이 자발적 성매매를 했고 그건 상업적 거래였을 뿐 강제 동원이 아니라는 거죠. 저들이 먼저 파기했는데 왜 우리는 파기하면 안 된다는 겁니까.”
인터뷰 = 오남석 차장 (정치부) greente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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