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희 부민통신㈜ 회장이 지난 15일 제주 블랙스톤 골프장에서 가족들과 라운드를 앞두고 연습 도중 퍼팅이 홀로 들어가자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이문희 부민통신㈜ 회장
이문희(65) 부민통신㈜ 회장은 골프에서만큼은 ‘이룰 것을 다 이룬’ 소원성취 골퍼다.
지난 15일 제주 블랙스톤 골프장에서 만난 이 회장은 때마침 손자까지 9명의 대식구와 함께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이 회장은 요즘도 블루티에서 드라이버 샷을 250야드 펑펑 날리며 장타력을 과시하고 있다. 스코어 역시 전성기나 다름없다. ‘육말칠초’, 잘 치면 68∼69타, 못 쳐도 72∼73타를 넘지 않는다.
이 회장의 골프 이력은 입이 딱 벌어질 만큼 화려하다. 지금까지 11차례 클럽챔피언에 올랐다. 1990년 뉴코리아CC를 시작으로 서울, 한양CC, 제주 블랙스톤, 남촌과 레이크힐스CC까지 6개 골프장 클럽챔피언을 섭렵했다. ‘라이프 베스트’는 9언더파 63타. 2015년 10월 서울CC에서 버디를 무려 9개 뽑아냈고 나머지 9개 홀에서 모두 파를 기록했다. 특히 4번 홀부터 7개 홀 연속 버디를 잡아내 종전 두 차례의 6개 홀 연속 버디 기록도 갈아치웠다. 63세였던 그는 이날 63타를 기록한 덕에 생애 첫 ‘에이지 슈트’ 기록도 덤으로 얻었다.
2014년 12월에는 한양CC 신코스에서 한 라운드에 이글 3개를 한꺼번에 뽑아내 ‘트리플 이글’ 기록도 작성했다. 6번과 9번 홀(이상 파5)에서 각각 2온 후 퍼팅 이글에 이어 11번 홀(파4)에서는 5번 아이언으로 친 샷을 그대로 집어넣었다. 앞서 2010년 8월 한양CC 신코스 15번 홀(파5)에서 티샷을 290야드나 보내 195야드를 남기고 5번 아이언으로 친 샷이 핀 앞 3m 앞에서 구르더니 홀로 들어갔다. 개장 62년째인 이곳에서 지금까지 유일한 ‘앨버트로스’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회장의 화려한 골프 이력은 남몰래 흘린 땀의 결과였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우여곡절도 많았다. 골프 입문은 1985년 12월, 은행 지점장들이 당시 지역 내 기업인들과 골프를 하면서 거래 관계를 쌓았던 시절이다. 30대 초반이던 그에게 은행 지점장의 권유로 시작한 골프는 말 그대로 신세계였다. 이 회장은 한번 빠지면 쉽게 몰입하는 성격.
그는 “취미로 3번을 미쳐 봤는데 등산과 사진, 그리고 골프였다”고 말했다. 학창 시절 산악부에 들어가 암벽까지 타며 등반가를 꿈꾸기도 했고, 샐러리맨 시절에는 첫 월급을 몽땅 털어 카메라를 살 만큼 사진에 푹 빠져 카메라를 메고 전국을 누볐다. 나중에는 카메라만 7∼8개가 넘었으며 집에 암실까지 갖추고 사진전에 출품도 했다.
직장생활 3년 만에 사업을 시작한 이후 골프에 빠진 뒤로는 30년 이상 골프만 해오고 있다. 골프를 하면서 이곳저곳 좋다는 골프장을 섭렵하다 보니 여행도 취미생활이 됐다. 업무를 겸한 여행도 많다 보니 지금까지 쌓은 항공사 마일리지가 230만 마일이 넘는다.
이 회장은 골프를 시작하면서 하루에 3번씩 연습장에 도장을 찍을 만큼 열성을 보였다. 하루에 친 연습 볼만 2000개. 새벽과 점심시간 그리고 퇴근 후에도 오후 10시까지 연습장에 나갔다. 경기 하남시의 동서울CC(현 캐슬렉스골프장)에 차를 몰고 매일 오전 4시 30분이면 도착해 혼자서 18홀을 라운드한 뒤 출근했다. 골프장 경비원이 그가 도착하면 문을 열고 하루를 시작할 정도였다.
이처럼 새벽 골프를 나가는 통에 부인을 깨우는 것도 미안해 몰래 나갔다가 바람처럼 집으로 들어왔다. 이런 노력 덕에 그는 6개월 만에 ‘싱글’ 스코어를 기록하더니 1년도 채 안 돼 언더파를 칠 정도가 됐다. 이 회장은 “당시에는 나보다 잘 쳤던 사람들을 이기는 재미로 열심히 했던 것 같다”면서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진실을 터득하며 또 다른 꿈을 키웠다”고 말했다. 골프를 배우면서 클럽챔피언이 되고 싶었다. 그는 클럽챔피언에 도전한 지 3년 만에 꿈을 이뤘다. 1990년 뉴코리아CC를 시작으로 챔피언 트로피를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아마 고수로 명성을 날렸다.
그러다가 2002년 뇌출혈로 쓰러졌다. 생사의 고비는 넘겼지만 식물인간이 됐다. 의사는 깨어나도 제대로 걷지 못할 거라고 예상했다. 이 회장이 정신이 들었을 때는 이미 석 달이나 지난 뒤였다. 기적적으로 깨어났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한 발짝 움직이기조차 힘들었다. 그는 ‘골프와는 이별해야 한다’는 현실에 절망했다. 휠체어를 타고 병원을 탈출해 뉴코리아CC로 갔다. 그는 휠체어를 탄 채 1번 홀에서 사람들이 골프 치는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만 봤다.
이 회장은 의료진의 만류에도 서너 시간씩 힘든 걸음을 내디디며 재활에 몸부림쳤다. 이런 노력 끝에 그는 몇 달 만에 다시 코스에 설 수 있었다. 쓰러진 이후 처음 나간 라운드에서 105타를 치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몸이 제대로 회복되지 않아 정상적인 보행이 힘들었지만 다시 골프채를 잡을 수 있게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던 것. 이 회장은 이후 빠른 속도로 회복해 병원에 실려 간 지 3년 만인 2005년 뉴코리아CC 클럽챔피언으로 복귀하며 또 한 번의 기적을 만들어 냈다.
이 회장은 쓰러지기 전 연 매출 2000억 원을 올리던 상장사인 ㈜코닉스를 경영했다. 늘 건강하다고 자신하며 지내는 바람에 뇌출혈로 쓰러지고 자리를 비운 사이 회사가 어려워졌다. 퇴원 후 곧바로 회사에 복귀한 그를 기다린 것은 노조의 파업이었다.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서 경영난 악화가 이어지자 건강을 우려한 가족의 만류도 있었고, 스스로 ‘이젠 내려놓을 때가 됐다’는 생각에 지분과 함께 경영권을 제3자에게 넘겼다. 그런 다음 자회사였던 부민통신㈜만 꾸려 오고 있다. KT, SKT, LG 등 유무선 통신 1군 협력업체로 연간 35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요즘도 주 3회 정도 라운드를 소화하고 있다는 이 회장은 “기회가 되면 챔피언전에 나갈 계획”이라며 “도전하려는 마음과 승부 근성이 솟을 때마다 내가 살아 숨 쉬는 존재임을 일깨워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