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뷔 20년만에 美서 연극 ‘와일드 구스 드림스’ 도전

“배우 첫 발 뗀 곳 브로드웨이
영화·TV에만 너무 익숙해져”

“영화와 달리 연극은 배우 예술
잊고있던 감각 되살리는 계기”

“기러기 아빠와 사랑에 빠지는
탈북여성 역할 새롭고 매력적”


“무대라는 낯선 공간에서 하염없이 실패하고, 나 자신을 미워하면서 다시 일어나 도전하고… 그런 경험이 지금 제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TV 드라마와 영화에 익숙해져 있던 저 자신의 틀을 깨고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컸죠.”

오는 9월, 데뷔 20년 만에 미국에서 연극 무대에 오르는 배우 김윤진(44·사진). 인기 드라마 ‘로스트’로 미국 시장에 자리 잡은 후 최근까지 TV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만 찾아볼 수 있었던 그다.

지난해 드라마 ‘미스트리스’ 시즌 4를 끝내고 올해 4월 개봉한 영화 ‘시간 위의 집’에 출연한 것이 최근의 활동. 그런 그가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라졸라 플레이하우스에서 탈북여성 유난희를 연기하기 위해 26일 미국으로 떠난다.


빠듯한 출국 일정 때문에 전화로 인터뷰에 응한 그는 “연극 개막이 두 달이나 남았지만 불안해서 틈틈이 대본을 보고 있다”며 매일이 설렘과 긴장의 연속이라고 했다. “사실 그간 미국에서 연극 출연 제안을 몇 번 받았지만 스케줄 문제 외에 저 자신의 두려움 때문에 고사했어요. 짧은 순간 대사를 암기했다가 잊어버리는 드라마와 영화 스타일에 익숙해져 있던 제가 두세 시간을 무대에서 홀로 연기할 수 있을까 걱정이 컸죠.”

망설이던 그에게 문화적 충격을 안겨준 작품이 바로 정한솔 작의 ‘와일드 구스 드림스’(wild goose dreams)다. “대본을 보는 순간 작가가 천재라는 생각을 했어요. 서울을 배경으로 탈북 여성과 기러기 아빠가 온라인 데이트 서비스를 통해 사랑에 빠진다는 얘기를, 그것도 미국에서 영어로 공연한다는 발상 자체가 재미있었죠. 게다가 미국 사람들은 탈북여성이 어떤 존재인지 잘 모르고 기러기 아빠라는 개념 자체도 없어요. 도대체 설명이 안 되는 캐릭터들을 무대에 던져놓은 용감한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어요.” 상대역인 국민성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배우 제임스 키슨 리가 맡는다. 작품의 형식도 독특하다. 무대 위 코러스들이 인터넷 상의 대화나 팝업창 내용 등을 공연 내내 쉴새 없이 떠든다. ‘지금 가입하시면 50% 할인!(온라인 데이트 서비스 광고)’‘유난희 님이 입장하셨습니다(채팅창)’ 등이다. 코러스의 대사가 짧은 노래처럼 리드미컬하게 이어지기 때문에 “연극이면서 뮤지컬이기도 하고 한 편의 영화같기도 한 작품”이라고 한다.

작품이 독특했던 이유도 있지만 스스로도 연극 무대에 대한 갈증이 가슴 한편에 늘 있었다는 김윤진. 미국 보스턴대에서 연극을 전공한 그가 배우로 첫발을 뗀 곳도 뉴욕 오프브로드웨이다. “흔히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고 TV는 작가의 예술이고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고 하잖아요. 그런 공간에서 제가 잊고 있었던 감각을 되살리고 20년 동안 활동하면서 생긴 버릇들을 깨고 싶었어요.” 그는 또 “연극의 고전인 ‘햄릿’만 해도 비극적인 결말을 다 알고 있으면서 왜 자꾸 보게 될까요. 그날의 공연에서만 관객과 배우들이 느낄 수 있는 뭔가 특별한 게 있기 때문이죠. 그런 경험들이 배우인 제겐 정말 소중합니다”라고도 했다.

미국이 아닌 한국 무대에서 김윤진을 만나볼 수는 없을까. “배우들은 늘 연극 무대에 대한 로망이 있기 때문에 다른 작품이라도 연이 닿으면 한국 무대에서 관객들을 찾아뵐 수 있을 거예요. 그러고 보니 제가 안 할 거라고 생각해선지 한국에서 연극 대본을 더 안 보내 주시더라고요.(웃음) 저도 무대에서 곧 뵐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인지현 기자 loveofall@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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