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일 1시간, 낮잠 2시간’ 책을 낼 당시의 츠바타 슈이치 할아버지와 츠바타 히데코 할머니. 할아버지가 여행에서 사온 바나나잎 모자를 함께 쓰고 있다.
‘밭일 1시간, 낮잠 2시간’ 책을 낼 당시의 츠바타 슈이치 할아버지와 츠바타 히데코 할머니. 할아버지가 여행에서 사온 바나나잎 모자를 함께 쓰고 있다.

밭일 1시간, 낮잠 2시간 / 츠바타 슈이치, 츠바타 히데코 지음, 김수정 옮김 / 윌스타일

이렇게 평온하게 하루하루를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1925년생 일본 건축가 츠바타 슈이치와 1928년생 아내 츠바타 히데코 부부의 ‘밭일 1시간, 낮잠 2시간’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이 노부부는 40년 전 아이치(愛知)현 뉴타운에 작은 통나무집을 짓고, 텃밭에서 70종의 채소와 50종의 과실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건축가이자 대학교수였던 슈이치 할아버지는 글을 쓰고, 기록하고, 텃밭을 가꾸고, 연장을 고치고, 설거지도 하고, 히데코 할머니는 요리하고, 하루 한 시간씩 뜨개질하고 길쌈을 한다.

이들의 일상은 히데코 할머니가 만드는 음식과 닮았다. 히데코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않아 몇 년 전부터 음식에 소금을 넣지 않고 있다. 그 대신 1주일에 한 번 가다랑어포, 다시마, 말린 조개 관자, 새우 등 좋은 재료들을 골라 몇 종류의 육수를 만들어 놓고 조리할 때마다 쓴다. 그런데 소금기 없는 음식을 먹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단맛도 너무 강하게 느껴져 더 담백한 음식을 만들게 됐고, 이제는 짜지도 달지도 않은 음식에서 재료의 깊은 진짜 맛을 알게 됐다고 했다.

이들의 하루하루도 담백하고 단순하다. 아침에 일어나 푸성귀를 딴 다음, 주스를 만들어 아침 식사를 하고, 10시에 간식, 점심 식사를 마치면 낮잠 시간. 저녁을 맛있게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그 사이에 텃밭에서 1시간 일하고, 1시간 뜨개질, 1시간 길쌈.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직접 만든 차와 케이크를 내고, 텃밭 한쪽에 둔 통에 음식물 쓰레기, 잡초, 나뭇잎을 모아 퇴비를 만들고, 멀리 도쿄(東京)에 사는 딸과 손녀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 보낸다. 때로는 같이 때로는 각각의 장소에서 각자의 즐거움을 발견하면서 지낸다.

주변 숲에서 주운 나무를 재료로 낡은 연장의 손잡이를 바꾸고 있는 슈이치 할아버지.
주변 숲에서 주운 나무를 재료로 낡은 연장의 손잡이를 바꾸고 있는 슈이치 할아버지.
고마운 사람들에게 보낼 목도리를 짜고 있는 히데코 할머니. 한 해 100개 정도 짠다.
고마운 사람들에게 보낼 목도리를 짜고 있는 히데코 할머니. 한 해 100개 정도 짠다.

100%는 아니지만 상당 부분 자급자족하는 삶. 그래서 이들의 삶은 ‘소박한 삶’의 실천가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 부부를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1930년대 뉴욕의 문명을 떨치고 버몬트 숲 속으로 들어가 자급자족의 삶을 살았던 니어링 부부가 자본주의 경제로부터 벗어나 자연 속에서 자기를 잃지 않고 살겠다는 철학을 실천한 지식인의 풍모를 보인다면, 츠바타 부부는 철학이 아니라 그저 모두에게 주어진 나날들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잘 보내는 일상인이다. 예쁜 도자기에 차를 내는 것을 좋아하고 길쌈으로 옷이나 목도리를 만들어 선물하길 좋아하는 히데코 할머니를 보면 버몬트주 산속에 농가를 짓고 정원을 가꾸며 살았던 타샤 튜더도 살짝 떠오른다. 하지만 매년 여름 방학이면 찾아오는 손녀에게 맛있는 것을 만들어주느라 바쁜 히데코 할머니는 타샤 튜더보다 평범한 우리들 할머니에 더 가까워서 더욱 친근하다.

이 부부의 삶을 담은 ‘인생 후르츠’라는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질 정도로 일본에서 유명한 이들은 이미 여러 권의 책을 냈다. 국내에도 ‘내일도 따뜻한 햇살에서’(청림)라는 책이 소개돼 있는데 이번 책은 전체적으로 부부의 일상을 전하면서도 음식에 초점이 가 있다. 히데코 할머니가 만드는 음식과 디저트 레시피도 들어가 있다. 나이 들면 슬슬 일하기 귀찮아질 만도 한데 히데코 할머니는 여전히 몸을 움직이며 요리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할머니는 어린 시절 장이 약해 어머니가 직접 만든 요리만 먹으며 자랐다고 했다. 그런 개인사 때문에 할머니는 평생 거의 외식은 하지 않았고 좋은 재료로 만든 좋은 음식이 사람을 건강하게 만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할머니는 자신을 위해 어떤 것도 사지 않았지만 가족을 위해 최고의 요리 재료를 사는 데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물건은 없어도 어떻게든 살 수 있어요. 하지만 먹는 것은 제대로 고르지 않으면 안 돼요. 음식은 생명으로 연결되니까요.” 여기에 할아버지의 모토는 ‘즐거운 일만 한다’, 더해서 할머니의 또 다른 모토는 ‘할 수 있을 만큼만 한다’. 뜨개질과 길쌈을 하루에 한 시간, 식탁보 다림질도 한꺼번에 많이 하지 않는다. 텃밭 풀 뽑기도 슬슬. 어떤 일도 오늘 중에 다 끝내려 하지 않는단다.

책 안에 쓰여 있지 않은 책 밖의 츠바타 부부의 진짜 삶을 알지 못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매일의 일상에서 기쁨을 느끼고 살아가는 이들의 삶의 기술이 놀랍다. 무엇을 얻고 싶고, 무엇을 성취하고 싶고, 어떤 가치를 쟁취해야 한다는 목표는 많지만 정작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 갖지 못한 것들 때문에 애를 끓이는 이들에게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서도 담담한 이 노부부의 삶에 대한 지혜를 권하고 싶다. 특히 은퇴 후 삶에 대한 고민이 많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것만큼 어떻게 살 것인가도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책은 2015년에 일본에서 출간됐는데, 책이 나온 뒤 슈이치 할아버지는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는 최근 ‘둘에서 혼자로’라는 책에서 혼자서도 여전히 통나무집에서 텃밭을 가꾸고, 음식을 만들고, 뜨개질을 하고, 길쌈을 하며 조용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159쪽, 1만40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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