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영 한림대 교수 정치학

서울시교육청이 지난달 24일 학생인권종합계획(안)을 공개했다. 상벌점제 폐지, 두발 자유화, 성(性) 소수자 학생권리 보호, 스마트폰 등 개인 소지품 검사 금지 등 학생 인권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교실 수업에서 정치적 이슈를 토론하고, 선거 연령을 만18세로 하향하며, 교육감 선거 투표권을 만 16세부터 허용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미 ‘물 수능’과 수능 절대평가로 느슨해진 고등학교 교실이 난장판이 되고, 정치판이 될 것임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이렇게 된 것은 서울시교육청이 역할을 망각(忘却)한 데 원인이 있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는 창의 역량 교육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학생 인권에만 관심을 두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청이 교육을 위한 기관인지 인권을 위한 시민단체인지 모를 상황이 됐다. 학생인권계획안은 문제가 많다. 첫째, 인권계획안은 마치 학교를 인권 침해 장소로, 교사를 잠정적인 인권 침해 집단으로, 학생은 무조건적 보호 대상으로 가정하고 있다. 그 결과 교육청은 학생 편이고, 교사와 학교는 학생 인권을 억압하는 세력이 됐다. 학교와 학생을 대립 구도로 상정하는 것은 교육청의 태도가 아니다.

둘째, 내용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훈육이 안 되므로 상벌점제를 도입했던 것인데, 이마저 없애면 학생 지도를 하지 말라는 지침이 된다. 학생을 훈육하지 못하는 학교라면 앞으로 학부모는 훈육을 위해 자녀를 학원에 보내야 할 상황이 될 것이다. 훈육의 사교육화다. 셋째, 교실을 정치판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우려스럽다. 선거연령 만 18세 하향은 국회가 논의해 법을 개정해야 할 사안인데도 교육청이 앞장서는 이유가 무엇인가. 교육청 본래의 역할을 넘어서는 월권이라는 비판이 가능하다. 더구나 고교 3학년 학생들이 투표권을 가지게 되는 경우 교실의 포퓰리즘 정치화는 불 보듯 뻔하다. 선거철이 되면 정치 논쟁이 고3 교실을 배회하고 막장 정치 구호가 난무할 것이다.

1966년 마오쩌둥(毛澤東)이 수정주의적인 류사오치(劉少奇)·덩샤오핑(鄧小平)과 맞서 싸우기 위해 문화혁명을 일으켰을 때 홍위병은 15세에서 20세 초반의 대학생과 고교생들이었다. 이 학생들은 사회의 부르주아적 요소를 축출하는 혁명가로 스스로 도취됐다. 그러나 이제 누구도 자신이 홍위병이었음을 밝히지 않는다. 폴 포트에 동원돼 킬링필드 학살을 자행한 크메르루주 군(軍)의 3분의 1 이상이 12∼17세의 어린 학생들이었다. 자유민주주의를 교육하는 것과 교실을 정치판으로 만드는 것은 엄연히 다른데, 교실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정치판으로 만드는 목적이 결국 학생들을 미래의 홍위병으로 만들려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스티브 잡스는 고등학교 때 수업 이외에 전자공학에 관심을 가졌고 휴렛팩커드사에서 방과 후 수업을 들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러한 미래 사다리를 제공하는 교육이야말로 진정한 인권 보호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교실을 훈육이 불가능한 난장판으로 만들고 정치 바람에 휩쓸리게 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

한국의 교육은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자원빈곤국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로 끌어 올리고 삼성, 현대, LG, SK와 같은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어낸 원천이다. 이제 교육마저 희망이 없다면 보수에도, 진보에도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교육은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며, 정치적 이해관계도 초월하는 국가의 근본임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