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예천 신풍미술관 ‘할머니 그림학교’
시집올적 모습·꼬부랑 신랑…
꼬막손으로 인생굴곡 그림으로
요즘은 ‘화투장 그리기’ 삼매경
전시회 열며 배우는 기쁨 쌓고
미술치료로 자신감까지 회복
이성은 관장 “우울증 등 치유…
어엿한 42명의 작가로 거듭나”
“할매 뭐 그릿니껴?”(‘할머니 무슨 그림 그리세요’의 경북 예천 방언)
그렇게 묻자 쪼글쪼글한 꼬막손으로 붓질을 하던 할머니 한 분이 바쁘다는 듯 “만날 보는 화투장 그리지.” 그렇게 응수한다. 경북 예천군 지보면 신풍리에 있는 신풍미술관 부설 ‘신풍리 할머니 그림학교’의 풍경이다.
그림학교 내 큰 작업 테이블에는 모두 8명의 할머니가 둘러앉아 화투장에 나오는 ‘비광’과 ‘팔광’, ‘홍싸리’와 ‘청단’ 등 눈에 익은 화투장 그림들을 아크릴물감으로 캔버스 위에 그려 넣고 있다.
신풍미술관 이성은(52) 관장의 설명이다.
할머니 그림학교는 이 관장이 2010년 시댁이 있는 예천에 미술관을 짓고 자리를 잡으면서 시작됐다. 애초에는 미술치료의 개념으로 출발했다.
“마을에 처음 들어와 미술관을 지으며 이런저런 고생을 하며 힘들 때 할머니들의 격려와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생활하다 보니 그 맘씨 좋은 할머니들이 우울증과 정서적 불안감으로 괴로워하는 것을 알았어요. 이유도 간단했어요. 장가 못 가는 아들 때문에 힘들고 그런 사연들을 또 어른들이 즐비한 집성촌이어서 속으로 삼키면서 생긴 병 같았어요. 그래서 미술치료의 개념으로 할머니들에게 그림을 가르쳐 보자고 생각했죠.”
이 관장이 그런 의도로 마을 경로당을 찾았을 때 처음 들은 말이 “우리 같은 ‘밥버러지’가 무슨 그림을 그려”라는 퉁명스러운 대답이었다. 그래도 꾸준히 크레용을 들고 경로당을 찾았다. 그리고 2010년 미술관이 개관(당시 미술관 이름은 ‘갤러리 윤’)할 때 할머니들이 그린 작품들로 개관전을 했다.
“개관전 때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미술관이 잘 운영되려면 수준 높은 작품을 걸어야지 이런 그림들로 되겠느냐고요.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오래 사신 할머니들이 그린 ‘동심의 세계’가 주는 감동을 한번 느껴 보세요.”
할머니 그림학교 벽에는 상설 전시 중인 할머니들의 그림 40여 점이 걸려 있다. 친기댁, 밤고개댁, 운골댁, 갈밭댁, 풍산댁, 이산댁, 서담댁, 해주댁 등 각기 다른 택호를 지닌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이다. 그림학교는 처음에 3, 4명의 할머니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모두 42명이나 된다. 평균 나이 85세에 가장 나이 어린 분이 75세, 많은 분은 90세다.
벽에 걸린 그림 한 점에는 할머니와 그동안 함께 살아온 할아버지의 모습이 담겨 있는데, 할머니 본인은 시집올 당시의 젊은 새댁으로, 할아버지는 등이 굽은 꼬부랑 노인으로 그려 놓았다. 슬픔과 해학이 교차하는 그림이었다. 소산댁이라고 불리는 김말수(85) 할머니가 그린 것이었다.
이 같은 할머니들의 그림에 반해 비록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2년 전에는 독일의 한 단체에서 초대전 의향을 물어오기도 했다. 또 할머니들은 요즘 전시회에 낼 화투 그림 외에 마을 담장을 벽화로 장식하는 일을 시작했다. 그러면 할머니들의 그림 실력이 이토록 좋아진 만큼 마음의 상처는 잘 치유된 것일까.
“그림 그리는 일이 재미있어. 여럿이 모이는 재미도 좋고. 아무튼 생전에 보지도 듣지도 못한 것을 배우니 진짜 좋아.” 기전댁(노순연·83) 할머니의 얘기다. 이 대목에 이르자 이 관장이 한 가지 얘기를 들려준다.
“기획전을 할 때 몇몇 할머니들이 구경을 오셨어요. 그런데 어떤 분이 ‘저 시골 할머니들이 여기 왜 왔느냐’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죠. 그랬더니 대뜸 할머니 한 분이 소리치시더군요. 우리도 작가야!”
이 관장의 얘기만 믿는다면 스스로를 작가로 부를 정도로 자존감을 높였으니 ‘미술치료’ 효과가 결코 작지 않은 셈이다.
예천 = 글·사진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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