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 시절에 고등학교를 다닌 필자는 줄곧 2개의 정당만이 존재하는 양당제가 안정적인 정당제라고 주입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양당제에서도 집권 여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는 것이 정치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추가적인 설명도 있었던 것 같다. 대통령이 전체 의석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유정회 국회의원을 뽑았던 시절에 정권을 정당화시켜 주는 전형적인 교육 내용이었다.
선거에서 몇 개의 정당이 있는지는 선거 제도의 영향을 받는 바 크다. 정치학자 모리스 뒤베르제는 최다득표 후보를 당선자로 뽑는 소선거구제에서는 양당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선거구마다 한 명을 뽑는 방식에서는 거대 정당의 잘 알려진 후보들이 유리하다. 그뿐 아니라 유권자들의 사표 방지 심리 때문에 소수 정당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당선 가능성을 고려해 차선책으로 거대 정당 후보를 선택하는 경향도 양당제 유지에 한몫한다.
그렇다고 소선거구제가 반드시 양당제를 가져오진 않는다. 소선거구제를 택한 국가에서도 다당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 이유 중 하나가 특정 정당이 일정 지역에서 집중적 지지를 받는다면 비록 전국적인 지지도는 낮아도 상당수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캐나다 퀘벡 지역이나 유럽 정당들이 특정 지역에서 집중적인 지지를 받은 것은 민족적 정체성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에서 특정 지역의 집중적 지지를 기반으로 제3정당이 등장한 경우가 국민의당이다. 지난 총선에서 서울지역 2석을 제외하곤 국민의당의 모든 지역구 의원은 호남 선거구였다. 비례대표 선거에서도 국민의당은 호남에서 집중적인 지지를 받았다. 비례대표 전국 득표율은 26.7%인데 광주 지역에서 53.3%, 전북 42.8% 그리고 전남에서 47.7%로 지역적 편중이 매우 컸다. 중요한 것은 왜 유독 호남 지역에서 신생 정당인 국민의당 지배 현상이 일어났는가 하는 점이다. 다분히 기존의 지지 정당인 민주당에 대한 처벌 성향 때문이었다. 호남에서만 국민의당이 어필할 수 있는 차별적인 균열 축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몇 개 정당이 존재하는 게 바람직한지에 대한 질문의 정답은 그 사회에 얼마나 많은 균열 축이 있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갈등이 다양하면 그 갈등을 정치적으로 대변하는 정당들이 있는 게 바람직하다. 다양한 정치적 요구가 있고, 거대 양당만으로 그러한 요구를 모두 수용할 수 없을 때 제3당이 출현해야 한다. 만일 제3당이 기성 정당과 차별적이지 못하다면 존재 의미가 없다.
안철수 전 대표는 국민의당 당 대표 출마의 변을 밝히면서 국민의당이 존재해야 다당제가 유지되며 그러지 않으면 거대 양당의 기득권 정치가 부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총선 이후 그동안 국민의당이 제3당으로서 보여준 기득권 정치를 넘어선 정치는 무엇이었는지 묻고 싶다. 당 대표 출마를 결심한 이유가 당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라는 인식이 바로 현재 국민의당의 위상이며, 결국 국민의당이 제3당으로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자기 고백인 셈이다.
안 전 대표는 국민의당이 무너지면 국민은 포퓰리즘의 대상이 되고 정쟁에 동원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민의당이 없으면 국민은 기득권 정치의 수단으로 전락한다는 주장은 국민을 윽박지르는 것이다. 국민은 그렇게 무능하지 않다. 정치가 잘못되면 국민은 그것을 바로잡을 능력이 있음을 보여준 것이 촛불집회였다. 국민의당 존재 여부에 따라 국민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국민의당이 사라질 것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무능력하다고 비판받고 있음을 반성해야 한다. 국민의당은 지난해 2월에 창당됐다. 그런데 벌써 당이 새로워져야 하고 개혁이 필요한 지경이라면 부끄러워해야 한다. 다당제(多黨制)에 기여한 제3당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정의당은 국민의당보다 의석이 적지만 정당이 사라질 위기감을 느끼지 않는다. 정의당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 가운데서도 진보정치 세력을 대변하는 정의당과 같은 진보 정당이 있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제3당이 있다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거대 양당 이외의 정당이 국회에 진출함으로써 정치 반응성이 커질 때 다당제의 장점이 발휘되는 것이다. 다당제를 앞세워 정당의 존재를 정당화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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