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 / 에드 용 지음, 양병찬 옮김 / 어크로스

저자가 내놓는 이런 식의 비유는 익숙하다. 지구의 나이는 45억4000만 살. 이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을 1년으로 환산해 설명하는 방식 말이다. 지구의 탄생을 한 해의 첫 시작으로 하고, 지금을 12월 31일 밤 12시 직전이라고 놓고서 생명의 역사를 살펴본다. 가상의 1년짜리 지구 달력으로 보면 공룡의 등장과 멸종은 12월 26일 저녁 무렵이다. 포유동물은 12월 초에 진화했으며, 11월에 식물이 육지에 상륙했다. 다세포 생물이 나타난 건 그보다 한 달 전인 10월이었다.

지구에 생명이 처음 탄생한 건 이보다 한참 전인 3월 무렵. 그러니까 3월부터 10월까지 지구를 이끌어온 건 단세포 생물, 즉 미생물이었다. 미생물은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고 오염물질을 분해했으며, 지구의 순환주기를 이끌고 다양한 원소들을 화합물로 전환해 동식물에 공급하고, 유기물을 분해해 원소들을 자연으로 되돌려보냈다. 생명이 자급자족을 시작한 것도, 지구에 산소를 만들어낸 것도 모두 미생물이 이루어낸 혁혁한 공로다. 미생물들은 일곱 달 동안 지구를 비가역적으로 변화시켰으며, 그게 다양한 생명을 만들어내는 토대가 됐다는 얘기다.

저자가 이런 비유를 내세운 건, 짐작하다시피 하찮게 생각하는 미생물이 사실은 지구와 생명에 얼마나 중요하며, 경외의 대상이 되기에도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인간 진화의 출발은 미생물이며, 우리 한 명 한 명의 몸속에는 미생물이 만든 ‘놀라운 우주’가 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실제로 은하에 존재하는 별의 개수보다 한 사람의 소화기관에 서식하는 미생물의 개체 수가 더 많단다.

이 책은 인간과 동물의 생애사 곳곳에서 활약하면서 숙주에게 놀라운 능력을 제공하는 불가사의하고 경이로운 미생물에 대한 안내서다. 미생물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과학적 발견과 미생물과 생물의 드라마틱한 공생 관계는 물론이고 공생의 질서가 파괴되면서 초래되는 건강과 생태계의 위협, 그리고 이런 위기를 막으려는 과학자의 노력까지 두루 살핀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발생부터 성장, 번식, 진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 활동은 미생물과의 팀플레이 속에 이뤄진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그래서 저자는 사람 한 명 한 명이 곧 ‘걸어 다니는 생태계’이고, 우리 주변은 생명과 미생물의 경이로운 공생의 자연사로 가득하다고 강조한다.

영국 과학저술가협회상 등을 수상한 과학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이 책을 쓰기까지 얼마나 많은 논문과 자료를 바탕으로 삼았는가는 책 뒤편에 붙은 각주와 참고 문헌의 두툼한 분량으로 가늠할 수 있다. 참고 문헌을 적은 쪽수만 43쪽이고, 주석도 30쪽에 이른다. 의약품 라벨에 적은 ‘주의 사항’처럼 깨알 같은 글자 크기로 말이다. 504쪽, 1만9800원.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박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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