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억류돼 있다가 병보석으로 풀려난 임현수(가운데) 목사가 13일 캐나다 온타리오주 미시소거 큰빛교회에서 성도들과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북한에 억류돼 있다가 병보석으로 풀려난 임현수(가운데) 목사가 13일 캐나다 온타리오주 미시소거 큰빛교회에서 성도들과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北 석방후 첫 공식 석상 임현수 목사 ‘노동교화형 체험’ 증언

북한에 억류됐다가 31개월 만에 풀려난 한국계 캐나다인 임현수 목사는 13일 “구덩이 하나를 파는 데 이틀이 걸렸고 이 과정에서 손가락과 발가락은 동상에 걸렸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임 목사는 이날 캐나다 온타리오주 미시소거시에 있는 큰빛교회 일요예배에 참석, “억류 첫날부터 석방될 때까지 혼자 고독하게 2757끼를 먹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9일 북한 당국의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며 전날 캐나다에 도착했다.

임 목사는 2015년 1월 북한 취약계층 지원을 위해 북한 나선시를 방문, 이튿날 평양에 들어갔다가 북한 당국에 의해 체포돼 같은 해 12월 ‘국가전복’ 혐의로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억류 생활을 해왔었다.

이날 예배에서 임 목사는 주로 북한에서의 자신의 생활에 대해 말했다. 그는 “진흙땅이 너무 단단해 구덩이 하나를 파는 데 이틀이 걸렸다”면서 “상체는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손가락과 발가락은 동상에 걸렸다”고 밝혔다. 그는 겨울에 석탄 저장 시설 안에서 꽁꽁 언 석탄을 쪼개는 작업도 했다고 설명했다.

임 목사는 봄과 찌는 더위의 여름에도 야외에서 하루 8시간을 일했다면서 첫 1년간의 혹사에 몸이 상해 2개월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으며 이를 제외하고도 건강이 악화해 3번을 더 병원에 갔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검찰에 의해 처음에는 사형이 구형됐지만 재판에서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다면서 “그것은 신의 은총이었고 내게 큰 평화를 주었다”고 회고했다. 임 목사는 이어 “그 순간부터 견디기 어려운 외로움의 시기가 있었다”면서 “억류 첫날부터 석방될 때까지 혼자 고독하게 2757끼를 먹었고 언제 어떻게 역경이 끝날지 알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하지만 임 목사는 “김정은이 나를 놓아준 것은 수없이 많은 수사에 직면한 가운데 행한 선한 의지의 제스처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자신을 풀어준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김정은과 북한에 대해 우호적인 발언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일을 하는 동안 쉼 없이 기도했고 여러 어려운 순간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이겨낼 힘을 주셨다”면서 “낙담과 분개의 순간이 있었지만 이는 곧 용기와 환희, 감사로 변했다”고 말했다. 임 목사는 1997년부터 100여 차례 이상 북한을 방문해 아동보호시설과 노인요양시설을 지원해왔으며 2015년 당시에도 인도주의적 지원을 위해 방북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중앙재판소는 지난 9일 31개월간 억류해온 한국계 캐나다인 임 목사에 대해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병보석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유회경 기자 yoology@munhwa.com
유회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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