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우리나라와 유사한 상황인 대만이 섣불리 탈(脫)원전을 선언하고 낮은 전력예비율을 유지하다가 15일 대규모 정전이 발생해 전체 가구의 절반이 넘는 800여만 가구에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산업 피해는 집계조차 되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도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원전과 석탄을 폐지하고 재생에너지 발전을 20%까지 확대하는 게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추가 비용은 얼마일지, 땅은 있는지, 국가 발전이나 산업 발전을 고려했는지, 민생에는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등에 대한 구체적 생각은 없어 보인다. 제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2017∼2031년)에 적용될 전력설비예비율을 기존 22%에서 20∼22%로 낮춘다고 한다. 문 대통령의 탈원전 공약을 의식한 초안이란 지적이 나온다.

가장 큰 문제는 에너지 정책의 근본적인 목적 상실이다. 정부는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파동 이후 안정적 에너지 확보를 위한 정책을 수립해 왔다. 이런 배경에서 탈원전 정책의 문제를 지적해 본다.

첫째, 에너지 정책의 기본 목표는 수급 안정성이다. 어떤 발전원을 택할지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런데 현 정책은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었다.

둘째, ‘에너지원의 다변화’는 기본 원칙이다. 아무리 값싸고 좋은 에너지원도 한가지에만 의존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원자력 발전의 단가가 킬로와트시(kwh)당 불과 50원으로, 석탄 70원, 액화천연가스(LNG) 155원, 태양광 발전 250원보다 낮지만, 원자력 발전으로 모두 채우지 않은 것은 이러한 기본적 원칙에 충실한 것이다. 그런데 문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석탄과 원자력 발전이 차지하는 70%의 발전량을 대체할 방법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현재 가능한 선택은 LNG 발전뿐이다. 미국과 러시아로 수입원을 다변화한다 해도 위태롭긴 마찬가지다.

셋째, 가격도 문제지만 그 막대한 양의 연료를 어디에 비축할 것인가? 우리나라의 에너지 비축은 발전용 석탄은 20일, 석유는 4개월, LNG는 1개월, 원전 연료는 42개월이다. 우선, 비축량도 문제가 되지만, 비축의 위험성도 문제다. 핵연료는 원자로라는 특수한 장치만 아니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다른 에너지원의 경우에는 모두 화재와 폭발의 위험성이 있다.

넷째, 사실보다는 인식에 의존하고 있다. 지난 40년간 방사선으로 인한 사망자뿐 아니라 부상자도 발생하지 않은 원자력산업을 위험한 것으로 분류한 점부터 사실보다는 인식에 기초한 것이다. 우리보다 잘사는 선진국도 다 원전을 한다. 또한, 미세먼지는 연소를 수반하는 연료에서는 필연적인 것인데, 석탄을 LNG 발전으로 대체한 것도 이해가 안 된다.

다섯째, 수급계획과 연구계획을 혼동하고 있다. 에너지와 전력의 수급계획은 글자 그대로 수요를 공급하는 계획이다. 따라서 현재 이용 가능한 기술을 토대로 세워야 한다. 전력 수급계획은 2년마다 다시 짜기 때문에 기술 개발이 돼 다른 에너지원과 비교해 경쟁력이 생기면 언제나 도입될 수 있다. 2030년에 값싸질 전원을 지금 도입하는 것은 비경제적이다.

수요 관리라는 정책이 국가적으로 얼마나 많은 생산성 감소와 국민의 불편을 전제로 하고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전기는 고급 에너지다. 그 고급에너지를 가장 값싸게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외하고 고생할 이유는 없다. 또, 지구적 문제인 이산화탄소 배출을 가장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수단을 제외하고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 위해 대가를 치를 이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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