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모양의 ‘실용적’ 성냥이 세상에 처음 등장한 건 190년 전인 1827년이다. 발명자는 의사에서 화학자로 변신한 영국의 존 워커다. 한데 정작 특허를 받아 돈벌이를 한 사람은 그의 친구다. 그가 성냥에 붙인 이름은 ‘루시퍼(Lucifer)’. 라틴어로 ‘빛을 가져오는 자’라는 의미다. 기독교에선 악마의 또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
우리나라에 성냥을 처음 들여온 사람은 개화승 이동인이다. 그는 1880년 수신사 김홍집과 일본에서 귀국할 때 성냥을 가져왔다. ‘조선에 관한 기록’에는 1886년 제물포에 외국인들에 의해 성냥공장이 세워졌는데, 일본제 성냥이 범람하면서 생산이 중단됐다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우리 조상은 이보다 훨씬 더 이전부터 ‘마찰성냥’을 사용해왔음을 짐작하게 하는 ‘증좌’가 6년 전 나왔다. 독일 그라시민속박물관에서 발견된 조선 시대 홍만선(1643∼1715)의 ‘산림경제’와 이익(1681∼1763)의 ‘성호사설’에 기록으로만 남아 있던 ‘인광노(引光奴)’가 그것이다. 이 성냥은 자작나무를 1㎝ 정도 폭으로 얇게 켜서 한쪽 끝을 삼각형으로 뾰족하게 다듬은 뒤 그 끝에 유황을 발라 만들었다. 전문가들은 이 부분을 부싯돌로 쳐서 불을 일으켰을 것으로 본다.
국내 성냥 대중화는 1910년대 일본인이 인천·부산 등지에 성냥공장을 지으면서 시작됐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 전국에 300여 개 공장이 가동됐을 정도로 성냥산업이 번성했다. 유엔표, 아리랑표, 비사표, 기린표, 향로표 등이 당시 대표 상표다. 국민 술자리 떼창곡 ‘인∼천의 성냥공장, 성냥공장 아가씨’도 그때 유행했다. 군대에서 하도 많이 불러 정식 군가인 줄 알았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왔을 정도다. 다방에서 연인들이 성냥개비 탑 쌓기를 하는 모습도, 집들이 때 불꽃처럼 일어나라고 성냥을 선물하는 풍속도 그 시절 추억거리다.
가스라이터 사용이 일반화하고 값싼 중국산 성냥이 밀려 들어오면서 국내 성냥산업도 사양길에 들어섰다. 사찰용이나 판촉·홍보물로 버텨왔던 공장들도 하나둘씩 문을 닫기 시작했다. 급기야 마지막 남은 김해 경남산업공사(기린표)마저 며칠 전 70년 경영 역사에 마침표를 찍었다. 김해시는 이 회사의 역사성을 인정해 공장에 있는 성냥 제조 기계와 현판 등을 역사박물관에 보존할 계획이다. 사람이건, 산업이건 세월을 이길 장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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