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청년 여성 농업인 이소희 씨가 경북 문경시 농암면 청화원 밭에서 탐스럽게 익어가는 오미자 열매를 보여주며 환하게 웃고 있다.
지난 16일 청년 여성 농업인 이소희 씨가 경북 문경시 농암면 청화원 밭에서 탐스럽게 익어가는 오미자 열매를 보여주며 환하게 웃고 있다.

6차 산업화 성공 사례 - (7) 차세대 청년 농업인 문경 ‘청화원’ 이소희 씨

지난 16일 오후 경북 문경시로 가는 길에는 시시각각 굵기를 달리한 장맛비가 오다 그치다를 반복했다. 목적지인 농암면 궁터길에 들어서자 한 폭의 풍경화 속으로 들어온 듯한 차분한 평화를 안겨줬다. 차는 천천히 풍경 속을 가로질러 가는데 주먹 크기만 한 사과 알은 과수원이 무료했는지 울타리 밖으로 얼굴을 삐죽 내밀어 이방인을 반겼다. 과수원 옆 내(川)에서는 불어난 물길이 저희끼리 놀면서 우렁찬 소리를 내며 흘러갔다. 숲 속의 습기와 고요 속을 지나 청화원에 다다르자 산골 처녀 같은 주인이 뛰쳐나와 반갑게 맞이했다.

차세대 청년 여성 농업인 이소희(29) 씨다. 이 씨는 21년 전 귀농한 부모님과 함께 이곳에 살다가 꿈을 이루고 싶어 22세 때인 2010년 수도권으로 나가 5년간 유치원 교사를 했다. 그러나 유치원 교사를 하는 동안 아이들을 데리고 자연학습이라도 가게 되면 고향과 부모님의 모습이 늘 오버랩됐다.

이 씨는 1차 생산 소득만 갖고 빠듯하게 생활하는 부모님을 생각할 때 너무 안타까웠다고 한다. 부모님은 3만9600㎡(1만2000여 평)의 넓은 대지에 유기농으로 이것저것 심었지만, 풀과 함께 자란 농작물을 수확하는 것이 생활조차 힘들게 했고 적지 않은 빚도 쌓였다. 그런 부모님을 보며 안타까운 한숨만 내쉬던 이 씨는 여러 해 동안 고민하다 마침내 해결책을 찾아냈다. ‘그래, 6차 산업을 농촌에서 해보자!’

청화원 황토방 숙박동
청화원 황토방 숙박동

6차 산업은 1차 산업(농림수산업), 2차 산업(제조·가공업), 3차 산업(서비스업)을 복합한 산업을 말한다. 농작물을 생산만 하던 농가가 고부가가치 상품을 가공하고 향토 자원을 이용해 체험 프로그램 등 서비스업으로 확대해 높은 부가가치를 발생시키는 산업이다. 6차 산업은 한마디로 도농상생·협력을 통해 농촌·농업인의 소득 증대를 가져오는 미래 농촌 산업의 방향이다.

“이렇게 말하면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돈 벌려고 왔어요. 확실한 비전이 있었거든요.” 이 씨는 2014년 귀농해 올해가 이곳에서 생활한 지 4년째다. 유기농법을 유지하되, 마을의 특성을 살린 농작물을 가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자체 브랜드를 만들었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도입해 도시민이 찾아오는 농촌으로 변모시켰다. 게다가 지금은 농고·농대생들과 전국의 농민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 씨는 기존에 부모님이 소유한 3만9600㎡와 임차한 2만6400㎡(8000평)의 국유림까지 합쳐 모두 6만6000㎡(2만 평) 중 시설동과 산책로 등 9900㎡(3000평)를 제외한 5만6100㎡(1만7000평)의 땅을 가꾸고 있다. 봄에는 이 중 1만3000㎡에 취나물·고사리·가죽나물·산마늘(명이나물)·음나무순·곰취 등 6가지 나물을 재배한다. 물론 모두 유기농이다. 다래순은 자연산으로 산에서 채취한다. 여름에는 990㎡ 규모의 땅에서 무농약 인증을 받은 블루베리와 아로니아를 수확한다.

또 주로 부모님이 맡아 재배하는 9900㎡ 규모의 오미자 농사도 거들어 가을에는 오미자와 꾸지뽕 열매를 딴다. 겨울에는 밀린 교육을 다닌다. 전국의 농업인을 대상으로 6차 산업 관련 강의에 나서는가 하면, 한 달에 두 번 경북농민사관학교에서 수업도 듣는다. 올해는 치유농림업 CEO 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이 씨네는 21년간 한 번도 화학비료와 제초제를 써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 덕분에 체험동과 살림집, 운동장을 제외한 사방에는 풀이 무성하다. 이 씨가 주로 하는 일은 잡초 제거다. 손으로 뽑기도 하고 낫질을 하기도 한다. 뽑거나 벤 풀은 다시 그 자리에 쌓아 둔다. 썩어서 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청화원 옆을 흐르는 작은 천에는 가재와 도롱뇽이 서식하고 있다. 이 씨는 “부모님이 갖고 계신 친환경적 철학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청화원 시설배치도
청화원 시설배치도

체험장 2곳에서는 16가지의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과 가족 단위 방문객을 대상으로 오미자청 담그기 등 주로 농산물·전통음식체험을 제공하고, 도시에서 무술체육관을 운영했던 부친이 전통무술체험과 함께 후백제왕 견훤이 문경에서 무예를 연마한 연유 등 역사교육도 곁들인다.

특히 이 씨는 유치원 교사를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아동과 아토피·스트레스·암 수술 후 회복기에 있는 환자들을 위해 환경을 이용한 치유체험을 제공하고 있다. 또 작물 재배 교육 등 4가지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 씨는 연간 1t의 건나물(생나물로는 8t)과 각종 농산물을 직거래 또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이용해 판매하는가 하면, 체험객만도 연간 5000여 명이 찾아올 정도의 성과를 올리고 있다. 올해는 조심스레 7000여 명 방문을 예상하고 있다. 수입을 묻자 이 씨는 “2015년은 전해의 2배, 2016년에도 전해의 2배를 올렸고, 올해도 전해의 2배가 될 거 같다”면서 “1차 산업 때와 비교하면 4배로 늘었다”고 말했다. 열거하기에도 벅찬 이런 성과들은 모두 올해 갓 서른이 된 처녀 농군이 귀농 4년 차에 이룬 것들이다.

이 씨는 “농고·농대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 가면 정말 꿈이 없고, 비전이 없어 보여 안타까울 때가 많다”며 “청년 농부들이 후계농들에게 빛이 돼야 한다”면서 “성공하는 미래 농업인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는 또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 등 인성 형성기의 아이들과 농업을 기반으로 함께하는, 독일의 발도로프 숲 학교 같은 자연학교를 만드는 게 인생의 최종 목표”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문경 = 글·사진 김윤림 기자 bestma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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