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의 통상 당국이 오늘 서울에서 미국이 제기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요청안에 대해 논의를 시작한다. 한·미 FTA는 10년 전인 2007년 6월 30일에 체결되고 2012년 3월 15일에 발효됐다. 체결과 발효 사이에 5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으니 많은 논란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미국의 막강한 제도적·경제적 역량에 의해 한국의 고유한 제도와 경제 영역이 침식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팽배해 있었다. 그러나 5년여가 지난 지금, 결과는 정반대로 미국이 한국에 보완 협상을 요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면 왜 이런 결과가 빚어지게 됐는가.
두 나라가 FTA를 맺는 이유는 세 가지로 나눠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관세 등 무역장벽을 낮춰 소비자들이 싼값에 물건을 소비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고, 둘째는 각 나라의 산업을 보호하고 있던 제도를 철폐해 각 나라의 생산자들이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도록 하자는 것이며, 셋째는 양국이 무역 거래량을 늘리고 경제적 이해를 긴밀하게 함으로써 외교·안보적 유대를 강화하자는 것이다. 이중 첫째와 셋째는 대체로 문제가 없다. 그러나 둘째의 경우 보호막이 없어진 생산자들이 국제 경쟁을 이겨내지 못해 타격을 받을 경우 산업이 침체되고 실업자가 늘어나는 문제가 발생한다.
FTA의 원리는, 무역하는 나라들이 자유경쟁을 통해 경쟁력이 약한 산업을 축소하고 경쟁력이 강한 산업에 집중하는 구조조정을 함으로써, 즉 시장의 변화에 적응함으로써 모두 이익을 보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쟁에 적응해 구조조정을 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한국의 고령화한 농업은 농산물 시장 개방에 적응하지 못해 오랫동안 고통받아 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FTA 보완 협상의 대상으로 내세우는 미국의 자동차와 철강 산업 역시 오랫동안 구조조정에 실패해 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구조조정에 실패해 침체되고 실업자가 많은 산업을 안고 가는 고통을 감수하느니 차라리 자유무역주의를 포기하고 보호무역주의로 전환하겠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인 듯하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가려는 보호무역주의의 길 또한 평탄하지는 않을 것이다. 첫째, 미국으로서는,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속한 공화당으로서는 전통적으로 지켜온 자유무역주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둘째, FTA 재협상으로 과연 미국의 침체 산업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산업은 스스로 생산성을 키워서 살아나는 것이지, 무역협상을 통해 살려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셋째, 보호무역주의에 입각한 FTA 보완 협상은 소비자 가격의 상승과 외교·안보적 유대의 약화를 감수해야 한다. 미국의 소비자는 가격 상승을 순순히 받아들일 만큼 결코 만만치 않다. 그리고 미국이 동북아시아에서 한국과의 외교·안보적 유대를 약화시킬 명분은 별로 없다.
한·미 FTA 보완 협상은 엄밀히 말하자면,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협상 개시를 요청한 7월 12일 자 문서에서 밝혔듯이, 더 이상 ‘자유무역’ 협상이 아니라 ‘무역 불균형 해소’ 협상이다. 미국은 오랫동안 ‘무역 불균형은 경쟁력의 향상으로 해소되는 것이지, 협상으로 해소되는 게 아니다’는 자유시장경제 원칙을 견지해 온 나라다. 한국이 이번 보완 협상에서 취할 최고의 전략은 한국의 오랜 우방인 미국이 스스로 자국의 원칙을 훼손하지 않도록 깨우쳐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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