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리고개 하부공간 ‘미인도’
거리에 창문이 깨진 자동차를 방치해 두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자동차의 부품들을 훔쳐가기 시작하고 결국은 자동차를 파괴해 버린다는 미국의 범지학자 조지 켈링의 ‘깨진 유리창의 법칙’은 사소한 무질서라도 방치하면 큰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인데, 역으로 범죄가 일어날 수 없는 좋은 환경을 조성하면 도시가 더 안전하게 된다는 것으로 인식됐다. 따라서 ‘깨진 유리창의 법칙’은 도시를 더 안전하게 하기 위해 환경을 깨끗하게 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원이 됐고, 실제로 범죄율이 높은 뉴욕 지하철의 지저분한 낙서를 지우고 경범죄를 철저히 단속했더니 범죄율이 낮아졌다는 사례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져 안전이 의심되는 곳의 환경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환경을 개선하고 CCTV를 설치하는 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인식이 뒤따랐다. 깨끗한 환경은 결국 주민들이 지켜줘야 가능하고 CCTV는 사생활 침해의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도시재생의 해결안으로 나온 것이 공동체의 조성이다. 공동체 안에는 사람이 있고, 이웃이 있고, 마을이 있다. 마을공동체가 마을의 안전을 지켜주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까 하는 실험이 미아리고개에서 진행되고 있다.
미아리고개가 있는 동선동 마을을 가로지르는 동선고가차도 하부에 난 통행도로는 낮에도 그늘이 져서 음습한 공간으로 사람들이 다니기를 꺼리고 주변 사람들이 보지 않는 틈을 타서 몰래 버리는 쓰레기로 몸살을 앓던 곳이었다. 그런 공간을 정비해 공동체 문화공간으로 만들면서 ‘미아리고개 사람들의 도로’라는 독특한 이름의 ‘미인도’(성북구 동선동 3가 22-6)가 탄생했다.
‘미인도’가 처음 시작된 것은 2014년 11월 ‘성북구 미아리고개 재생프로젝트’가 추진되면서부터였다. 이전에도 마을의 주변 환경을 개선하는 노력이 있었지만 고가차도 밑까지는 손길이 미치지 않았다. 지역의 예술가들과 건축가들이 마을 재생을 위해 주민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찾다가 고가차도 하부 공간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들이 이곳에 쌓인 쓰레기를 치운 뒤 그림을 그려 넣고 다양한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지저분했던 고가차도 하부가 조금씩 달라졌다. 1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2015년 10월 정식으로 개관하면서 이 공간의 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자율방범대가 있었던 자리에 조성된 주민쉼터는 지역 주민들이 즐겨 찾는 공간이 되면서 하부 통행도로도 더 안전해졌다. 밝은 조명으로 단장한 쉼터에는 늦은 시간까지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보안 기능이 충족됐다. 또한 환경미화 자재 창고를 정리해 마련한 갤러리와 다목적공간에서는 지역 주민들과 공연단체들의 전시와 공연이 수시로 열려 주민들의 커뮤니티 중심 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시민 장터인 ‘고개장’에는 주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취재를 위해 이곳을 방문한 날 어린이들을 위한 ‘움직이는 놀이터’라는 행사가 열리고 있었는데 아이들은 물론 이들과 함께 온 아빠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아이들은 진행자의 도움을 받아 놀이를 즐겼고 아빠들은 아이들과 같이 놀아 주거나 책을 읽는 등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이곳에서 진행되는 모든 행사는 원칙적으로 무료라고 하니 주민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일이다.
이곳이 주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지만 시설이 좋은 편은 아니다. 고가차도 하부를 활용하고 있는 까닭에 냉난방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차들이 달릴 때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도 무시할 수 없다. 도로 위에 지은 탓에 화장실도 없다. 다른 문화시설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시설이지만 주민들을 위한 공간의 진화에는 거침이 없다. ‘미인도’는 주민들에게 더 다가가기 위해 생활문화지원 활동을 준비 중이다. 주민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문화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공간과 프로그램을 지원할 예정이다.
햇볕도 안 드는 고가차도 하부 공간이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이유는 이곳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공간은 주민들의 수요에 따라 진화한다. 미아리고개의 ‘미인도’가 어디까지 진화할지 궁금해지는 이유는 이 공간의 지향점이 주민에게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자라듯 공간도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미인도’는 다시 찾고 싶은 공간이다. 그때는 상상했던 것보다 더 훌륭하게 성장한 청년 ‘미인도’를 만나고 싶다.
건축가·디자인연구소 이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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