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여파 부정적 인식 팽배
장학재단에 기부뒤 증여세 폭탄
과도한 규제도 기부활동 걸림돌

美기부한도 없고 과세 10%공제
“정부, 자발적 기부 기준 안세우면
결국 취약계층·공익사업이 피해”


‘기업의 기부, 선으로 볼 것인가? 악으로 볼 것인가?’

지난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여파로 기업의 기부 활동을 나쁘게 보는 부정적 인식이 팽배하다. 이런 상황이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기업들은 “좋은 일을 하고도 욕만 먹을 수 있다”며 몸을 잔뜩 낮춘 채 여전히 눈치만 보고 있다.

만성적인 국가 재정 부족과 맞물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 갈수록 중시되는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기업의 기부 활동을 장려해야 하는 정부조차 이런 상황을 방관하고 있어 기부의 직접적인 수혜자인 공익적 사업추진 단체와 취약계층만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마저 나온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23일 “미르·K스포츠재단 사건으로 인해 신뢰와 이미지 개선을 위한 정상적인 기부와 출연 행위조차 자칫 뇌물처럼 오해될 수 있다”면서 “기업 처지에선 이 같은 시선에 큰 부담을 안고 있어 국가적 행사인 평창동계올림픽 후원에도 선뜻 나서기가 어려운 형편”이라고 말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평창올림픽 개막 200일을 앞둔 지난 7월 24일 공개행사에 참석해 공기업의 후원을 당부했다. 민간 기업에 손을 벌렸다가 오해를 사지 않겠다는 뜻이 읽힌다. 평창올림픽은 총 운영비 2조8000억 원 가운데 3000억 원이 모자란 상황이다. 한국전력 등 공기업이 뒤늦게 나서기로 하면서 기업후원 목표액을 채울 수 있긴 하겠지만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린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규제도 문제다. 장학재단에 회사 주식 180억 원어치를 기부했다가 140억 원의 증여세 폭탄을 맞은 수원교차로 창업자 황필상 씨의 소송 사례는 기업의 기부 활동을 가로막는 또 다른 걸림돌을 보여 준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이에 대해 “(황 씨가) 7년여의 소송을 통해 최근 승소 판결을 받아 내긴 했지만 편법 지배를 막는다는 이유로 대가 없는 기부 행위까지 틀어막는 ‘과도한 규제’는 이참에 손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기업의 사회공헌 규모는 10년 사이에 2배 수준으로 늘긴 했지만 미국과 비교하면 10분의 1 정도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015년 펴낸 사회공헌 백서에 따르면 주요 기업 231개사가 2014년 한 해 동안 지출한 사회공헌 규모는 2조6708억 원으로, 2004년 227개사가 지출한 사회공헌 규모(1조2284억 원)의 2배가량이었다.

하지만 기업의 사회공헌 촉진 활동을 해온 단체인 미국 CECP(Committee Encouraging Corporate Philanthropy)가 조사에 응한 자국 기업 272곳의 지난해 기부금을 취합한 결과, 총액은 245억 달러(약 27조8000억 원)로, 우리나라의 10배 수준이다. 국내 기업보다 회사 규모 자체가 큰 기업 수가 절대적으로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가와 사회 모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요하게 여긴 결과이기도 하다. 실제로 미국은 법인이 기부 주체인 경우 과세 금액의 10%까지 면세 혜택을 제공하고, 기부대상이나 기부자산의 한도 규정을 따로 두지 않는다.

경제단체 고위 관계자는 “공익법인 수입 중 기업 기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데도, 정부가 정경유착 근절 등과 관련해 명확한 입장과 기준을 제시하지 않아 기업들은 눈치만 볼 수밖에 없는 처지”라면서 “이런 상황이 장기화하면 결국 피해자는 취약계층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가이드스타에 따르면 2015년 국내 공익법인 8285곳의 총 기부금 수입(5조6569억 원) 중 기업이 낸 금액은 45.3%(2조5665억 원)를 차지했다.

이관범 기자 frog7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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