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정치학

박근혜 전 대통령 출당(黜黨) 문제로 보수 진영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22일 “당이 이렇게 궤멸하고 한국의 보수 진영 전체가 국민의 신뢰를 상실하게 된 계기를 만든 데 대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이 있다”면서 출당론에 불을 댕겼다. 당내에서는 “1심 선고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박 전 대통령의 출당을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친박(親朴)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렇지만 한국당과 박 전 대통령 간의 관계를 재정립하지 않고는 보수 재건도, 보수 통합도 어렵다.

지난 2007년 대선에서 진보 진영은 참패했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26.1%)는 보수의 이명박 후보(48.7%)에게 531만 표 차이로 완패했다. 당시 모든 언론은 진보의 몰락을 예견했다. 하지만 대선 3년 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진보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16개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당시 집권당이던 한나라당은 5곳에서만 승리했다. 최대 승부처인 서울시 25개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은 21곳을 석권했다.

이렇게 친노 세력이 부활한 이유는 무엇일까? 2007년 대선 참패 이후 친노는 스스로 ‘폐족’ 선언을 하고 국민에게 용서를 빌었다. 결국, 대선 패배에 대해 책임을 지는 진정성이 지방선거 승리의 마중물이 됐다. 한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살신성인 정신도 큰 역할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12월 대선 10개월 전에 열린우리당을 탈당했다. 자신이 제안한 ‘원포인트 개헌’을 둘러싼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을 차단하고, 당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탈당에 대해 일관되게 “당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하겠다”고 했다.

이에 비해, 탄핵 사태의 주된 책임자인 박 전 대통령과 친박의 행동은 크게 비교된다. 궤멸하고 있는 보수를 살리려면 박 전 대통령은 스스로 당적을 정리했어야 했다. 그것이 보수 통합의 밀알이 돼 보수를 살리는 길인데, 이를 거부했다. 정치로 풀어야 할 일을 정치로 풀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 친박 중에 폐족을 선언한 사람도, 박 대통령 탄핵에 책임을 지는 사람도 없었다. 이게 진보와 보수의 차이다.

보수 재건(再建)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보수의 가치를 지키는 ‘보수의 철학화’가 필수적이다. 보수계 원로인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곧 발간될 자신의 회고록에서 박 전 대통령 탄핵 사태에 대해 “정말로 책임지고 반성해야 할 사람은 보수주의 가치에 배반한 행동을 한 정치인들이지 보수주의가 아니다”라고 했다. 박근혜의 실패는 보수 가치의 실패가 아니며, 박근혜를 살리는 것이 보수를 살리는 게 아니라는 의미와도 일맥상통한다.

보수 통합을 이끌어내는 ‘보수의 정치화’도 중요하다. 한국당과 바른정당 두 보수 정당의 지지율이 합쳐서 10%대에 머무르고 있는 상황에서 보수 적통(嫡統) 논쟁은 무의미하다. 지금은 한가하게 ‘진짜 보수다’ ‘가짜 보수다’ 하고 싸울 때가 아니다. 내년 지방선거 이전에 두 정당은 합치는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보수주의 철학자 에드먼드 버크는 ‘보수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개혁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전 총재도 “보수의 이념과 정체성을 지키면서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자기 개혁의 길을 가는 것이 진정한 보수의 모습”이라고 했다.

분명, 혁신 없이 재건 없고, 혁신을 거부하는 보수는 보수가 아니라 수구(守舊)다. 단언컨대, 박근혜 출당을 조속히 매듭짓지 않으면 보수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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