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73) 전 국무총리가 2년의 수감생활을 끝내고 23일 만기출소하자 여권의 주요 인사들이 대한민국 사법체계를 부정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시 검찰 기소도, 재판도 잘못됐다”고 불씨를 댕기자, 김현 민주당 대변인도 서면논평을 통해 “잘못된 재판으로 인한 억울한 옥살이였다”며 기름을 부었다. 한 전 총리는 불법 정치자금 9억 원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돼 2015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유죄를 확정받았다.

여당이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3명의 만장일치 유죄판결까지 문제 삼으며 법치를 부정하는 것은 최근 정치권을 비롯해 사법부 안팎에서 강하게 불고 있는 ‘사법개혁’의 바람을 스스로 걷어차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21일 대법관을 지내지 않은 김명수 춘천지법원장이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되는 ‘파격 인사’가 단행됐을 때도 예상외로 법원 내 불만이나 반발이 적었던 이유는 사법개혁의 공감대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한 전 총리가 억울하게 옥살이했다”는 민주당의 주장으로 인해 앞으로 문재인 정부 아래 추진될 사법개혁의 명분이 흐려지게 됐다는 우려가 만만찮다. 정부·여당이 외치는 사법개혁이란 게 ‘특정 정치세력의 이익에 복무하는 사법부’로 변모시키려는 것이냐는 의문마저 제기되는 실정이다. 자신들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조차 부정하는 여권 인사들의 발언으로 인해 앞으로 어떠한 사법개혁 시도가 나와도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판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걱정이다. 여권은 자기 얼굴에 침 뱉는 정치 이벤트를 스스로 하고도 그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정말로 한 전 총리가 억울한 수사와 재판을 받았다고 생각한다면 재심을 청구하거나 국회 국정조사를 요청해야 할 것이다.

김리안 사회부 기자 kn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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