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시인

잔소리란 대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하는 자잘한 타이름을 말한다. 일종의 노파심과 조바심에서 하는 말이다. 아이들로서는 어른들이 쓸데없이 자질구레하게 늘어놓는 말이 될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은 어른들이 잔소리를 시작하면 귀부터 막으려 할 것이고, 또 어른들은 안심찮아 한 소리를 또 하고 또 하고 그럴 것이다.

어린 시절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게 잔소리를 가장 많이 들려주신 분은 외할머니다. 네 살 때부터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외할머니 손에 자랐고, 성년이 된 뒤에도 간헐적으로 만나면서 살았으므로, 나를 가장 잘 아는 어른이 외할머니다. 그러니 내게 가장 많은 잔소리를 들려주셨을 것이다.

내가 외할머니에게서 가장 자주 들은 잔소리가 있다. “너는 머리가 좋은 아이가 아니야. 노력을 하니까 그만큼이나 하는 거야.” 들을 때마다 외할머니가 야속했다. 기왕이면 머리가 좋은 아이라고 말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들을 때마다 불만이었다. 하지만 그때 외할머니가 나더러 머리가 좋은 아이라고 했더라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일이다.

외할머니에 비해 친할머니는 함께 산 기간이 길지 않다. 하기는 그분은 과묵한 분이라서 말씀이 많지 않기도 했던 분이다. 다만, 밥상머리에서 들려주신 말씀이 기억난다. “새들을 좀 보아라. 아무리 먹이가 많아도 새들은 반쯤은 배를 비운다. 그래야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이란다.” 오늘날 내가 소식(小食)주의자가 된 것은 친할머니 덕분이다.

성년이 되고 시인이 되어서는 선배 시인들에게서 들은 잔소리가 많다. 맨 먼저, 나를 신춘문예에 당선시켜 준 박목월 선생의 잔소리. 당선 인사차 원효로 4가 5번지 선생 댁으로 갔을 때, 선생은 이런 잔소리를 해주셨다. “나 군, 서울 같은 데는 올라올 생각하지 말고 시골에서 시나 열심히 쓰면서 살게.” 오늘날 내가 시골에 눌러사는 사람이 된 것은 아무래도 박목월 선생의 잔소리가 큰 몫을 한 셈이다.

그다음은 전봉건 선생의 잔소리. 전봉건 선생은 북한에서 내려온 월남 시인으로 제기동 한옥마을에 살고 계셨다. 상경 길에 날이 저물어 선생을 따라 그 추운 집에서 일박할 때, 선생은 이런 말씀을 주셨다. “나 형, 될수록 산문은 쓰지 않도록 하세요. 시를 쓰는 데 산문은 방해가 됩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씀도 얹어주셨다. “살아난다는 보장만 있다면 젊은 시절 죽을병에 한 번 걸려 보는 것도 좋은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 나는 선생의 충고를 곧이곧대로 따르지 못하고 너무 많은 산문을 쓴 사람이 되고 말았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또 그다음은 김구용 선생의 잔소리. 김구용 선생은 한국 시단에서는 특별한 시인으로 유불선 삼교에 통달한 한학자이며 동양에서 최초로 중국의 ‘열국지’를 한글로 완역한 분이다. 선생이 좋아 동선동 자택으로 몇 차례 세배를 간 일이 있는데, 그때마다 선생은 술자리를 봐주시면서 나에게 부탁을 했다. “내가 시한테 원수를 많이 졌소이다. 나 형이 내 시의 원수를 좀 갚아주구려.” 도무지 뜻 모를 말씀이었지만, 살면서 조금씩 그 뜻을 깨치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외에도 나는 선배 문인들의 잔소리들을 더 기억하고 있다. 그 가운데 몇 분의 것을 소개하면 이러하다. 성찬경 선생. 영문학 전공으로 평생 대학에서 영문학 강의를 하면서 산 분이다. 그런데 그분은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나이가 들수록 영어가 모래알처럼 씹힙니다.” 아, 이 얼마나 솔직하고 과감한 고백의 말씀인가! 그만큼 모국어가 좋다는 간접 표현이다.

임강빈 선생. 대전 지역에서 살았던 시인으로, 긴 생애를 소문 없이 조용히 마감하신 분이다. “100편의 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100사람에게 읽히는 한 편의 시가 중요하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런 시가 없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으냐!” “사과는 제가 사과인 줄도 모르고 익는다. 시인도 그래야 한다.” “복숭아나 오얏은 스스로 자랑을 하지 않아도, 그 나무 아래로 사람들이 다녀 저절로 길이 나게 되어 있다.”[도리불언(桃李不言) 하자성혜(下自成蹊)]

그리고 김남조 선생. “시는 질투심이 많은 신과 같아서 다른 데를 기웃거리다 돌아오면 빗장을 안으로 걸고 열어주지 않는다.” 이 얼마나 무서운 충고인가!

내 일찍이 이런 말씀들을 더욱 귀담아듣고 그대로 따랐어야 했다. 더러는 따르고 더러는 놓치거나 어기며 산 게 어제오늘이다. 또한, 그분들의 잔소리, 즉 충고를 깨치게 된 것은 나 스스로 그분들보다 나이가 많아진 뒤의 일이다.

이제 와 어른들의 잔소리가 그립다. 아무도 나한테 잔소리를 해줄 어른이 없고 나 스스로 나이 먹은 사람이 된 까닭이다. 나 또한 가끔 문학 강연을 하는 기회에 젊은 세대들에게 잔소리 비슷한 말들을 하는데, 오늘의 젊은 세대들은 나의 잔소리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비록 그들이 오늘에는 알지 못하더라도 내일 그들도 나처럼 지난날을 돌아보며 지난날에 들었던 나의 잔소리들을 좋은 쪽으로 기억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지막으로, 내가 평생 가슴에 안고 살았던 고등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이셨던 김기평 선생님의 잔소리 몇 마디를 여기에 보태어 본다.

“사향을 지녔으면 저절로 향기가 풍기리니, 어찌하여 꼭 바람을 맞아 설까 보냐!”[유사자연향(有麝自然香) 하필당풍립(何必當風立)]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지만 교만하게 살지 않는다.”[빈이무첨(貧而無諂) 부이무교(富而無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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