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교 국제부장

26일 북한이 단거리 발사체 도발을 강행하기 하루 전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제재와 대화는 선후관계가 아니고, 함께 갈 때 북핵 해결의 단초가 열렸음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그는 대북정책에서 제재와 대화 동시추진 의지를 분명하게 천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주요정책 결정에서 통일부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는데,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 지 이틀 만에 나온 발언이다.

조 장관의 상황 인식은 아연실색을 금치 못하게 만든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워크숍에서 “과거 남북관계가 좋았을 때 북핵 문제에서 진전이 있었고, 한반도 상황도 안정적으로 관리됐다”며 대화 필요론을 펼쳤다. 하지만 북한이 핵 개발을 추진한 이후 안정적인 상황이 있었는지 묻고 싶다. 다만 그렇게 믿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핵미사일을 가진 현재의 군사강국 북한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대화파들은 지금 다시 그 오류와 오판의 문턱을 넘으려 하고 있다.

스탈린과 마오쩌둥(毛澤東)은 영리한 정치가였다. 그들은 미국이 핵무기로 군사적 우위에 서자, 조지 F 케넌 전 소련 주재 미국대사가 과거 미국이 재래식 무기 열세에 놓였던 시절 본국에 제안한 정책을 모방했다. ‘우리는 벽으로 둘러싸인 정원에서 큰 이빨을 지닌 개와 함께 있는 것과 같다. 할 수 있는 최선은 그 이빨이 어떠하든 우리와 상호관계가 없다고 가정하는 것이다.’(케넌 회고록 중, 1967년).

한술 더 떠 두 공산주의 지도자는 교활하기도 했다. 스탈린은 몰로토프 외교장관이 1945년 런던 외교장관 회담에서 “원자탄을 위하여!”라는 건배사를 용인할 정도로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취했다. 마오쩌둥은 미국을 종이호랑이라고 무시했다. 하지만 내심 핵공포에 떨면서 핵무기를 개발·확보하기 위한 비밀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지금 우리는 이빨을 드러낸 북한이라는 ‘개’와 한반도에서 살고 있다. 대화파들은 그 개는 우리를 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군사력의 우위, 적어도 균형의 요건이 필요하다. 당장의 위협을 외면하더라도 대화·협상과 동시에 전술핵 재배치든 핵무장이든, ‘공포의 균형’ 방안을 검토해 나가야 한다.

외교·안보 정책이 정권을 태동시킨 그룹의 견해와 신념만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아마추어적이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은 중대 국익이 걸린 현안은 종종 초당파적 ‘현인 그룹’에 자문했다. 케넌 역시 딘 애치슨 전 국무장관과 함께 포스트 2차 세계대전과 냉전의 질서를 설계했던 ‘6인의 현인’ 중 한 명이다. 그들은 린든 존슨 대통령에게는 “베트남 전쟁은 이길 수 없으니 손을 떼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포함됐을 현재 현인그룹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화를 통한 북핵 폐기는 불가능하니 늦기 전에 군사적 행동을 취하거나, 아니면 한반도에서 손을 떼라’고 조언했는지도 모른다. 안타깝지만 문 대통령이 초당파적 자문그룹을 운영한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청와대 대화파들의 생각이, 핵을 가진 김정은 정권에 남한을 이빨로 물지 않는다는 이성을 기대하는 것이라면 생존과 안녕의 책임은 국가가 아닌 개인에게 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jklee@
이제교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