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전남 구례군 토지면 직전마을 지리산피아골식품 공장 앞 장독대에서 김미선 대표가 중학교 때 부모님께 제안해 수차례의 실패 끝에 성공한 고로쇠 수액으로 만든 된장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지난 16일 전남 구례군 토지면 직전마을 지리산피아골식품 공장 앞 장독대에서 김미선 대표가 중학교 때 부모님께 제안해 수차례의 실패 끝에 성공한 고로쇠 수액으로 만든 된장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 ⑧ 농식품부 선정 6차산업人 ‘지리산피아골식품’ 김미선 씨

초대형 장 항아리 110여개 등
‘HACCP 인증’ 위생관리 철저
주민 고용하려 자동화도 안해

농협 도움으로 본격 판로 개척
LA·뉴욕 이어 내년엔 中진출

“청년들, 1∼2년에 포기 말고
마라톤이라 여기고 도전하길”


지리산 자락에서도 가장 깊은 계곡으로 꼽히는 피아골의 마지막 동네 전남 구례군 토지면 직전마을을 찾아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무더위가 한창이던 지난 16일 서울에서 차로 4시간여를 쉼 없이 달려 피아골 초입에 들어선 뒤에도 굽은 계곡을 따라 숲길을 한참 동안 내달렸다.

초행객의 머릿속에 ‘더 가면 과연 마을이 있을까’하는 불안이 슬슬 고개를 쳐들 즈음 등산로 입구에 오롯이 자리 잡은 직전마을이 나타났다. 지난 7월 농림축산식품부가 선정한 ‘이달의 6차 산업인’으로 꼽힌 김미선(여·31) 대표의 사업장 지리산피아골식품은 바로 이곳에 있었다. 6차 산업은 1차 산업인 농수산업과 2차 산업인 제조업 및 3차 산업인 서비스업을 융합해 부가가치를 높인 산업이다.

계곡을 따라 콸콸 흐르는 물소리가 연신 귀를 간질이는 주차장에 들어서자 산골 마을 풍경과는 거리가 먼 현대식 공장 건물과 함께 어린아이 키보다 훨씬 큰 600ℓ짜리 대형 항아리 110여 개가 줄지어 서 있었다. 점심 무렵이 가까워진 시간에도 김 대표는 전날 들어온 주문에 따라 전국 각지로 배송할 제품 출하 준비에 정신없이 바쁜 모습이었다.

김 대표는 “2011년 처음 회사를 세웠을 때는 ‘애들이 장을 담가 봤자겠지’ 하는 평이 많았는데 지금은 차츰 입소문이 나면서 온라인 주문도 받고 백화점에도 납품하는 등 전국에서 주문이 밀려들고 이 산골까지 직접 와 구매하는 분들도 있다”며 웃었다.

그를 따라 공장 내부에 들어서자 지난해 식품안전관리 인증(HACCP·해썹)을 받은 곳답게 깔끔한 작업대에서 하얀 위생복과 위생모까지 갖춰 입은 직원 5∼6명이 된장, 고추장을 포장하느라 분주했다. 메주 등을 건조시키는 건조실과 청국장 등을 제조하는 발효실 등 필수시설이 빠짐없이 갖춰져 있지만 전국 최연소 여성 이장이기도 한 김 대표의 신념에 따라 자동화기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인건비 부담이 있지만 나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들이 다 같이 잘사는 것이 맞겠다고 생각해 장을 담그고 병입한 뒤 포장하는 일까지 사람의 손으로 직접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지리산피아골식품 직원 수는 7명이지만 장 담그는 철이나 선물세트 주문이 많은 명절 무렵이면 인근 주민들이 와서 일손을 돕는다.

이제 갓 서른을 넘긴 김 대표지만 장 담그기 경력은 벌써 20년 가까이 됐다. 피(稷·기장)밭이 많아 붙여진 피아골이라는 이름처럼 이 마을은 농사를 짓기 어려워 30여 가구 주민들이 고로쇠 수액이나 나물 채취, 양봉 등과 함께 민박, 식당 등 관광업으로 생계를 이어왔다. 김 대표 부모도 이 마을에서 민박을 겸한 식당을 운영해왔고 세 딸 중 맏이인 그는 어려서부터 식당일을 도와 나물 무치는 법, 장 담그는 법 등을 배웠다. 중학교 때부터 등산객 사이에 손맛 좋다는 입소문이 나서 직접 담근 된장을 팔기도 했다. 2015년 그의 이름을 따 등록한 ‘피아골 미선씨’ 브랜드의 대표 상품 고로쇠 된장, 간장 역시 중학생 때 개발했다.

구례에서 중·고교를 졸업한 뒤 전북 전주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 그는 2학년 때 큰 고민 없이 어린 시절 자신이 좋아하던 장류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평소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라”고 말하던 부모의 반대는 없었지만 친구나 지인들은 만류했다. 농촌으로 돌아오는 젊은이들을 능력 없는 사람 취급하는 시선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 대표는 학업을 이어가면서도 틈틈이 전국의 발효 장인들을 찾아 공부했고 2006년 졸업과 함께 태어나고 자란 고향으로 돌아와 사업체를 차렸다. 그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가진 첫 번째 꿈이 우리 마을을 행복하게 잘사는 마을로 만드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곳에 발효식품 테마공원을 조성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사업 초기에도 장맛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문제는 이미 시장이 포화상태라고 할 수 있는 국내 장류 시장 환경과 판로였다. 온라인상에서 인지도가 쌓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고 대형 마트 등은 가격이 맞지 않았다. 때마침 농협 등의 도움으로 조금씩 판로를 개척할 수 있었고 촬영 차 지리산을 찾았다가 장맛을 본 유명 셰프의 추천으로 서울 특1급 호텔에도 납품하게 됐다. 2015년 12월에는 수출도 시작했다. 전북도청 직원 소개로 선이 닿은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현지 바이어가 직접 피아골을 찾아 장맛을 본 뒤 경쟁제품보다 비싼 가격에도 흔쾌히 주문을 넣었다. LA에 이어 6월부터는 뉴욕에서도 판매가 이뤄지고 있고 내년에는 중국 등 다른 해외시장 진출도 고려하고 있다. 지리산피아골식품의 지난해 연 매출은 5억 원에 이른다.

그는 “지금은 어느 정도 사업이 안정됐지만 처음 농촌에서 창업했을 때 주위의 편견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며 “이 길이 맞나 싶어 갈팡질팡하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고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35세가 되기 전 청년 농업인을 양성할 수 있는 교육장을 세우는 것이 꿈이다. 그는 “농촌에는 농사뿐 아니라 농산물 가공, 체험 등 도전할 수 있는 일자리가 적지 않은 만큼 청년들이 두려워하지 말고 왔으면 좋겠다”며 “그 대신 1∼2년 해보고 안 된다 포기하지 말고 마라톤이라 생각하면서 도전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구례 = 김남석 기자 namdol@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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