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LPGA 3승 김인경
올 시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메이저대회를 포함해 3승을 거둔 김인경(29)이 지난 주말 금의환향했다. 지난 28일 강원 춘천시의 제이드팰리스골프클럽에서 김인경을 만났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한화클래식(총상금 14억 원)의 프로암대회 첫날이었다. 김인경은 다음 날 열리는 프로암에 출전하지만, 사전 연습을 위해 대회장을 찾았다. 김인경이 KLPGA투어에 출전한 것은 지난해 이 대회 이후 꼭 1년 만이다. 국내 대회에 출전하려면 LPGA투어 2개 대회는 빠져야 한다. 김인경은 자신을 3년째 후원해 온 한화그룹에 ‘보은’하기 위해 한화클래식을 선택했다.
김인경은 31일 개막되는 한화클래식에서 은근히 ‘한방’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예전과 달리 이번에는 월요일부터 코스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다. 김인경은 “올해로 3년째 스폰서대회에 출전하는데 이젠 뭔가를 보여줄 때가 됐다”면서 “자신감을 바탕으로 최고의 경기를 펼치겠다”고 밝혔다.
김인경은 화제가 된 핑크색상 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지난 7월 24일 끝난 마라톤클래식과 지난 7일 끝난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우승할 때 썼던 모자다. 김인경은 “본래 빨간색 계열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김인경은 하늘과 바다를 연상시키는 파란색을 선호하는 편. 그런데 올해는 왜 핑크일까. 한화골프단에서 매년 시즌을 앞두고 모자를 제작해 소속 선수들에게 보내준다. 그는 여러 가지 색상의 모자 100개를 받았는데 대부분 사이즈가 컸고 핑크색상 모자만 딱 맞았다. 그리고 김인경은 핑크색상 모자를 쓰고 마라톤클래식을 제패했다. 김인경은 “마라톤클래식 우승 이후 좋은 기억이 남았다”면서 “이젠 나도 모르게 핑크색 모자에 손이 간다”고 설명했다. 이 모자가 행운을 가져다주는 부적 같은 존재가 됐다.
김인경은 지난 6월 숍라이트클래식에 이어 마라톤클래식, 그리고 메이저대회인 브리티시여자오픈까지 3승을 챙겼다. 2012년 4월 나비스코챔피언십(현 ANA인스피레이션)에서 생애 첫 메이저대회 우승을 놓친 이래 5년 4개월 만에 메이저대회 챔피언이 됐다. 무려 27차례 메이저대회에 도전해 마침내 정상에 섰다. 나비스코챔피언십 마지막 18번 홀에서 30㎝짜리 짧은 퍼팅에 실패해 연장전으로 들어가 유선영(31)에게 패한 뒤 5년간 자신을 괴롭혔던 족쇄를 끊었다. 김인경은 2007년 LPGA투어에 진출한 뒤 10년 만에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다. 통산 8승을 거둔 김인경은 지난해 9월 중국에서 열린 레인우드클래식을 포함하면 1년 동안 4승을 거둔 셈이다.
김인경은 숍라이트클래식에선 공동선두로 출발해 경쟁자를 따돌렸고, 마라톤클래식에선 1타 뒤지다 역전했다. 그리고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는 6타 차 선두를 지켜냈다. 완숙미를 엿볼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 김인경은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선 추격하는 선수가 없었지만, 마지막 날 바람이 많이 불어 타수를 지키기가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3개 대회 모두 우승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던 건 아니었다”면서 “컨디션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코스 매니지먼트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집중했는데 잘 맞아떨어졌다”고 덧붙였다. 우승이 따라왔다는 뜻. 김인경은 “게임을 하는 동안 재미있게 즐기자고 생각하니 창의적인 플레이가 가능해졌다”면서 “성적에 집착하면 더 안 풀린다”고 말했다.
김인경은 브리티시여자오픈 이후 3주째 휴식 중이다. 지난 10주 동안 8개 대회에 출전했기에 피로가 쌓였다. 당초 브리티시여자오픈 직전 열린 스코티시여자오픈을 건너뛰려다 링크스 코스를 미리 경험하는 게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출전하면서 숨 돌릴 틈이 없었다. 강행군 덕에, 스코틀랜드 코스에서 ‘모의고사’를 치른 덕에 김인경은 생애 첫 메이저대회 트로피를 품을 수 있었다.
김인경은 요즘 ‘호사’를 누리고 있다. 3주를 쉬는 건 참으로 오랜만이기 때문이다. 김인경은 체력적인 회복이 빠른 편. 브리티시여자오픈을 끝내고 처음 4일간은 골프채를 전혀 잡지 않았다. 그는 “시즌 중간에 골프채를 아예 잡지 않는 게 도움이 된다”며 “골프채를 손에서 내려놓는 게 잘못된 버릇을 고치는 데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정작 마음은 휴식과는 거리가 있다. 김인경은 “쉬는 게 더 어려운 것 같다”면서 “쉬는 동안 불안감이 엄습해 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인경은 어릴 적부터 독한 구석이 있었다. 그는 고교 2학년이던 2005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동갑내기 최나연, 신지애 등과 주니어 무대를 주름잡았지만 계속 한국에 있다가는 꿈을 이룰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그는 “아빠에게 영어공부를 하고 싶고, LPGA 선수가 되고 싶으니 항공권만 사달라고 졸랐다”고 말했다. 외동딸을 홀로 머나먼 타지로 보내는 부모가 항공권만 사줬을 리 만무. 그의 부모는 기숙사가 있는 학교를 물색해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학교로 전학시켰다. 서울 한영외고 영어과를 다녔던 김인경은 현지 학생들과 부대끼며 자연스레 영어를 익혔다. 물론 방과 후나 쉬는 날에는 골프를 병행했다. 우리말을 한마디도 못하는 날도 많았다. 모르면 물어보면서 차근차근 배웠다. 그리고 미국에서 아마추어대회를 석권하고 LPGA 퀄리파잉(Q)스쿨을 1위로 통과했다. 2007년 투어에 합류한 이래 11년째 한 번도 내려오지 않고 있다.
김인경은 초등학교 때부터 ‘골프일기’를 써왔다. 9세이던 초등학교 2학년 때 골프클럽을 손에 잡은 뒤 지금까지 20년 동안 적어온 ‘골프 다이어리’는 20권이 넘는다. 그에겐 일종의 훈련일지이자, 그날그날의 ‘경기 비망록’이다. 어릴 적엔 결과만 적었지만 지금은 연구해야 할 과제 등을 잊지 않고 남긴다. 김인경은 “골프일기를 한두 권은 항상 갖고 다니면서 이동할 때나 숙소에서 수시로 펼쳐 본다”면서 “골프장마다 잔디가 다르고, 또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 우왕좌왕할 때가 많았는데 그런 기억을 다이어리에 담아 뒀다”고 말했다.
마라톤클래식에서는 2007년 대회 때 썼던 야디지북을 사용했다. 김인경은 10년 전 마라톤클래식에서 1∼7번 홀 연속 버디를 챙겼던 기분 좋은 추억이 있다. 10년 전과 달라진 게 거의 없었다. 18번 홀만 약간 바뀌었을 뿐 다른 건 다 그대로였다. 골프일기는 자신을 돌아보고, 또 비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꼼꼼하게 작성하기에 예전보다 비거리가 더 늘어났다는 걸 확인할 수 있고, 그린 플레이의 단점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김인경은 요즘 ‘결혼 언제 할 거야?’ ‘청첩장은 언제 돌려?’라는 질문을 자주 듣는다. 골프와 행복하게 지내는 현재 상황에 만족하지만, 주위의 ‘기대’는 크다. 김인경은 “결혼과 관련된 질문을 자주 듣다 보니 고려해 보겠지만, 김칫국부터 마실 순 없다”면서 “남자친구부터 찾아야 할 것 같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IK 재단’을 일찌감치 설립했다. 또 스페셜올림픽 홍보대사, ‘퍼스트 티’ 등 자선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한화클래식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기에 앞서 인천 송도에서 열리는 퍼스트 티 행사에 참가하고, 한화골든비치골프장에서 청소년을 위한 자선 이벤트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김인경은 기타 연주 솜씨가 수준급이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8년 전 기타와 인연을 맺었다. 시간 날 때마다 실력을 갈고닦아 프로 뺨친다는 평가를 듣는다. 김인경은 “노래 실력은 노래방에서 ‘그만둬’라는 말을 듣지 않는 정도”라며 “노래보다는 기타, 피아노를 연주하는 게 더 좋고 비틀스 음악과 클래식을 즐긴다”고 소개했다.
김인경은 “스폰서 복이 많다”고 자평했다. 다른 선수처럼 이곳저곳 기웃거리지 않았다. 하나은행과 8년을 함께했고, 3년 전 두 번째 후원사인 한화그룹과 계약했다. 그는 스폰서 자랑을 잊지 않았다. 김인경은 “한화는 잘하는 선수를 집중 지원하지 않고, 성과보다는 성장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다”면서 “그래서 2위나 3위, 주목받지 못하던 선수를 우승으로 이끌어 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올 시즌 LPGA투어 각 타이틀 부문 상위권에 올라 있다. 개인 타이틀 욕심을 부려볼 만하지만 김인경은 “개인 타이틀 중 탐나는 건 없다”면서 “개인 타이틀보다는 올해 한 라운드에서 두 자릿수 언더파를 남겨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동안 9언더파까지는 여러 번 남겼지만, 하루에 10타를 줄여 본 적은 없단다. 올 시즌 LPGA투어는 10개 대회가 남아 있다. 김인경은 에비앙챔피언십과 중국에서 열리는 레인우드클래식, 한국에서 열리는 KEB하나은행챔피언십, 그리고 최종전인 CME그룹투어챔피언십 출전을 확정했다. 추후 컨디션을 고려하면서 다른 대회 참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인터뷰 = 최명식 부장(체육부) mscho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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