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사우나에 한 남자가 앉아 가슴팍을 턱턱 치며 남성미를 과시합니다. 잠시 후 등과 목 언저리에 용 한 마리가 똬리를 튼 문신을 한 남자가 들어오자 먼저 앉아 있던 남자는 슬며시 자리를 뜹니다. 영화 속 단골 장면이죠. ‘문신= 건달’이라는 등식이 깊게 자리하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Mnet ‘쇼미더머니 시즌6’에는 래퍼들이 출연해 자웅을 겨룹니다. 출연진뿐만 아니라 심사위원들의 몸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문신을 찾을 수 있죠. 알아듣기 어려운 가사와 욕설이 섞인 래핑이 마뜩잖던 제 어머니는 래퍼의 문신이 눈에 띄자 한 말씀 하십니다. “부모님이 주신 몸에다….”

어머니는 JTBC ‘효리네 민박’을 즐겨 보십니다. 그런데 푹 빠져 보시다가 가끔 화들짝 놀라곤 하시죠. 이효리가 몸 곳곳에 새긴 문신 때문입니다. 고희를 눈앞에 둔 어머니에게 문신은 여전히 달갑지 않은 존재죠. 이런 인식은 여전히 대한민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연예인이 TV에 출연할 때 문신 부위에 피부색과 비슷한 테이핑을 하곤 합니다. 문신을 드러냈다가 방송 심의에 걸리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고화질(HD) TV 시대에 그들이 문신을 가렸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죠. 결국 ‘눈 가리고 아웅’입니다.

아버지는 스포츠 경기를 즐겨 보십니다. 타석에 선 야구 선수들의 팔뚝과 날렵하게 레이업슛을 던지는 농구 선수들의 몸 곳곳에서도 문신이 목격되죠. 그들은 문신 부위에 테이핑을 하는 경우도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보다 완고하신 아버지는 별말씀이 없으십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역시 침묵하죠. ‘연예인은 안 되고, 스포츠맨은 된다’는 암묵적 동의라도 있는 것일까요?

방심위 규정 중 ‘문신을 노출하면 안 된다’는 조항은 없습니다. ‘방송은 건전한 시민정신과 생활기풍의 조성에 힘써야 한다’(28조) 정도의 표현만 있죠. 하지만 연예인과 스포츠맨의 문신을 바라보는 상반된 시선에서 알 수 있듯, 그 적용은 이현령비현령입니다.

1992년 대법원은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을 불법으로 규정했습니다. 의사만이 문신 시술을 할 수 있단 의미죠. 하지만 눈썹, 아이라인 등 미용문신 외에 몸에 그림을 그리는 서화문신을 할 줄 아는 의사는 극소수입니다. 결국 서화문신을 원하는 이들은 전문 타투이스트를 찾아가는데요. 실상 법적으로 볼 때 이들은 잠재적 범죄자이며, 그들에게 시술을 받는 건 불법 행위에 동참하는 셈입니다.

문신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존재하되 인정받지 못하는 묘한 위치에 서 있죠.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고, 문신은 더 이상 조폭의 상징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게 규정 역시 재정립할 때가 아닐까요?

realyong@munhwa.com
안진용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